은퇴하는 순간 생활고...노후 없는 일본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11.04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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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내기도 빠듯한 국민연금...日노인들, 저임금에도 경비원에 몰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연금 수입만으론 생활 유지가 불가능한 일본 노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하루 몇만원의 일당을 받으며 경비원 등 고된 일에 노인들이 몰린다. 이들은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했다가도 은퇴하는 순간 생활고에 빠진다며 스스로를 '하류 노인'이라고 부른다.

3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일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인력은 총 55만명, 이중 60세 이상의 연령은 44%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은 29.7%, 70세 이상은 13%에 달한다. 매년 60세 미만 연령층의 경비원 구직은 줄어드는데, 노인층만 홀로 고성장세다.



아사히신문은 "거리의 공사 현장 등 일이 고된 자리일수록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면서 "노인들이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73세의 가시와 고이치씨는 지난달말 기록적인 폭우가 몰아친 후에도 지바현의 한 건설 현장에서 근무를 서야했다. 편의점에서 산 우비를 입어도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일자리를 지키려면 혹독한 환경에서도 불평은 하면 안됐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현재 부부 합산 국민연금 수령액이 월 6만엔(약 64만원)에 불과하다. 부부가 사는 아파트의 월세만도 6만6000엔으로 국민연금을 넘어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공사장 현장 경비원의 월급은 18만엔(약 194만원)에 불과하지만 그는 "노인이 현실적으로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경비원이 유일하다"고 했다.

고이치씨의 회사에는 70세 이상 노인이 80%를 차지할 정도로 노인 비율이 압도적이다. 이들은 주변 이웃들에게 공사장 경비원으로 일하는 것을 들킬 것이 걱정돼 지하철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일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하류 노인'이라고 부른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전체 가구 중 연수입이 300만엔(약 3200만원) 미만인 가구는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인의 90%가 노후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답한 조사 결과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에는 일본 금융청이 노후 자금으로 국민연금 외에도 2000만엔(약 2억1600만원)이 더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자 일본 노인들은 불안감을 넘어 정부에 분노까지 느끼는 실정이다. 평범한 직장인도 은퇴후엔 생활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노후 문제는 일본에서 미혼인구와 은둔형외톨이 등 인구구조가 변하면서 더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미혼인구는 남성이 4명 중 1명 꼴, 여성은 7명 중 1명꼴인데 매년 상승세다. 게다가 은둔형외톨이처럼 사회·경제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정부 통계에 완전히 잡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고령화 할수록 경제가 짊어져야 할 부담도 늘어난다. 국제의료복지대학 이나가키 세이치 교수는 미혼 인구의 빈곤율은 여성 기준 20년 후 40%, 40년 후에는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2040년이면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35%를, 2060년이면 40%로 노인 비중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달 노인들에게 70세까지 일자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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