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에 193만원' 열차여행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

머니투데이 오진영 인턴 2019.10.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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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 겨냥한 국내 고급 열차 '레일크루즈 해랑', 한우 활어회 등 현지식부터 모든 여행비용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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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크루즈 해랑의 외부 모습. / 사진 = 코레일 제공레일크루즈 해랑의 외부 모습. / 사진 = 코레일 제공


'오리엔트 특급'은 프랑스 파리와 터키 이스탄불 사이를 운행한 고급 열차로, 오늘날의 특급 호텔에 빠지지 않는 화려한 시설을 자랑했다.

장인의 솜씨로 가공된 침실 벽과 최고의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을 경험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인사들로 몇 개월 후까지 예약이 가득 찼으며, 루마니아의 왕은 오리엔트 특급의 단골 고객이었다. 불가리아의 한 왕은 불가리아를 지나는 오리엔트 특급을 직접 운전할 정도로 '오리엔트 특급'은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과 휴전선으로 갈라져 대륙과 떨어진 사실상의 섬이며, 프랑스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국토도 작아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침대 열차'가 발 붙일 틈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고급 시설을 갖춘 '오리엔트 특급'같은 열차는 요원한 일이 됐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에서도 오리엔트 특급을 볼 수 있다'는 제목의 글이 게시돼 누리꾼들의 이목을 끌었다.



해당 글의 게시자는 "1박에는 200만원, 2박이면 250만원인 국내 열차가 있다"면서 "차라리 해외 여행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고가라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누리꾼들은 "어디 유럽을 가도 200만원이면 충분할 텐데"라는 비판적 반응과, "뭔가 있으니 그 정도 가격이 책정된 것이 아니겠느냐"며 두 가지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였다.

과연 1박에 200만원인 한국의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어떨지, 국내의 유일무이한 침대 열차 '레일크루즈 해랑'을 알아봤다.

◇2박 3일에 290만원, 1박 2일에 193만원…'달리는 호텔'

레일크루즈 해랑의 시설. / 사진 = 코레일 제공레일크루즈 해랑의 시설. / 사진 = 코레일 제공

스위트룸 2인 기준 '레일크루즈 해랑'의 가격은 2박3일에 290만원, 1박2일에 193만원이다. 강남구의 최고급 H호텔이 50만원부터 가격대가 형성되고 광화문의 F호텔도 1박에 70만원 대 정도인 생각하면 얼마나 고가인지 알 수 있다.


'레일크루즈 해랑'측 관계자는 "탑승부터 내릴 때까지 단 하나의 추가 비용도 없는 합계 금액"이라면서 "열차 내 식사·와인·다과 등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으며, 도착하는 여행지마다 특산물 식사·입장료 등을 모두 부담한다. 이용하신 고객 분들도 대단히 만족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레일크루즈 해랑'의 일정표를 보면, 한우·활어회·광양 불고기 등을 맛볼 수 있고, 현지 교통 비용이나 레일바이크 이용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약 7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8량 열차를 43명이 이용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도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전세계적으로 놓고 보면 '레일크루즈 해랑'의 가격은 오히려 싼 편에 속한다. 일본의 고급열차인 '시키시마(四季島)'의 경우에는 3박 4일 여행상품이 1인당 최대 1000만원(98만 엔)에 달하는 금액이며, 인도의 호화 기차 '마하라자 익스프레스(Maharajas Express)'는 1박에 최대 360만원이 넘는다. 중국 상하이에서 청두를 오가는 침대칸 요금은 1박에 40만 원(2330위안)으로 이들에 비해 다소 싸 보일 수 있으나 중국의 물가와 26만 원(1500위안)남짓인 해당 구간 항공료를 비교할 때 훨씬 비싼 금액이다.

2008년 개통한 '레일크루즈 해랑'은 매주 화·금·토요일만 예약을 받아 왔으나 이때까지 외국인을 포함한 3만 4000여 명이 이용해 왔으며, 한국여행업협회에서 선정한 '우수 여행상품'에 7회 선정되기도 했다. 30일 현재 다음달인 11월의 예약은 총 13번 중 5번이 마감됐다.

◇부산에서 정동진까지 특산물·명소와 함께하는 여행

레일크루즈 해랑의 방문 관광지들. 불국사, 케이블카, 뮤지컬, 해변 등. / 사진 = 코레일 제공레일크루즈 해랑의 방문 관광지들. 불국사, 케이블카, 뮤지컬, 해변 등. / 사진 = 코레일 제공


'레일크루즈 해랑'은 서울역을 출발해 단양·영월·경주를 거치는 1박 2일 일정이나 순천·부산·정동진을 거치는 2박 3일 일정이 대표 상품이다. 여행지에서는 각 지역의 특산물이나 명소를 즐길 수 있다.

순천에서는 국내 최대 갈대군락지인 순천만 습지를 둘러보고 '한국 3대 불고기'로 꼽히는 광양 불고기를 즐길 수 있으며, 부산에서는 아쿠아리움을 구경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활어회를 먹을 수도 있다. 정동진에서는 일출을 곁들여 동해의 황태를 맛보고, 태백에서는 태백산 한우 고기가 제공돼 각 여행지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레일크루즈 해랑'관계자는 "가격 부담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방문하는 지역마다 주요 관광지와 특산 음식으로 구성된 정찬을 즐기실 수 있으며, 숙련된 승무원들이 여행 내내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들의 만족도가 크다"고 강조했다.

'레일크루즈 해랑'의 주요 고객은 60~70대의 어르신들이다. 관계자는 "부모님들께 '효도 관광'을 보내드리고 싶어하시는 고객 분들이 많이 예약하신다"면서 "연세 있으신 분들은 아무래도 해외여행이 무리일 수 있다. '레일크루즈 해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회사가 함께한다"고 말했다.

◇주된 수요는 '효도 관광'…일본은 고급 버스 여행도


'1박에 193만원' 열차여행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
'레일크루즈 해랑'의 인기는 한국 사회의 고령화와도 연결된다. 해랑측 관계자도 "노인 분들을 겨냥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고 숨기지 않는다. 언어 소통과 위험을 이유로 해외 여행을 기피하는 노인이 많아 '국내 여행의 고급화'를 노렸다는 의미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고령자들의 절반에 가까운 51%가 주말이나 휴일에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여행'을 꼽았다. 여행사 '모두투어'의 조사에 에서는 만 60세 이상의 해외여행객 비중은 2014년 14.8%, 2016년 17.7%로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은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에 대해 '다양하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높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일본 여행계는 노년층 여행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다다미방과 편백나무 욕조, 고급 식당을 갖춘 시키시마 고급열차 이외에도 18석으로 좌석을 줄이고 미니 와인바 등을 배치한 고급 버스까지 등장했다. 해당 버스는 12일간 버스로만 관광지를 돌아보는 여정이지만, 노인 계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 이미 올해 12월까지 예약이 마감됐다.

프랑스의 경우 아예 국가에서 노인들의 여행비를 지원해 줄 정도로 '고령자 여행보내기'에 열심이다. 프랑스 국립고령보험금고와 국립바캉스수표사무소는 고령자들의 여행비를 최대 50%까지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체크바캉스(Le Cheque-Vacances)'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1892년부터 시작돼 프랑스 전역에서 할인 혜택을 지원하고 참여 기업에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등 고령자들의 국내 여행을 적극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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