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루비콘강 건넌 배터리 싸움

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2019.10.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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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LG화학 (372,500원 ▼9,000 -2.36%)SK이노베이션 (108,000원 ▼2,000 -1.82%)의 배터리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LG화학은 지난 25일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증거개시(Discovery)가 강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에 제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받기 어려운 한국 법원보다 미국 법원이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LG화학은 또 "배터리 사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법적분쟁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향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규모에 버금갈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SK뿐 아니라 다른 경쟁업체와도 법적분쟁 및 특허전쟁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LG화학은 올해 초 ITC에서 안전성강화분리막 특허로 중국 ATL 및 OPPO모바일과 법정 다툼을 벌이다 '합의'했다. 이들 업체가 미국에서 벌어들이는 분리막 매출의 일정 비율을 기술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막판에 합의점을 찾았다. 이때 IP(특허)가 향후 LG화학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양사 소송에 대한 ITC 예비판정은 내년 6월, 최종판결은 내년 4분기이다. ITC가 '합의'를 권유해 올 연말 혹은 내년 초쯤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지만, 내년 6월이나 연말까지 법정다툼이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TC 고민도 깊을 것으로 보인다. SK는 조지아 배터리공장을 포함해 최대 5조원까지 미국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LG도 미시건 공장에 이어 배터리 2공장을 GM과 짓기로 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앞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쉽지 않다.

양사가 국내에서 화해하는 것은 사실상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LG화학은 경찰에 SK이노베이션을 형사 고소해 SK 본사와 연구소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이에 맞서 SK는 분리막과 관련, 더 이상 쟁송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양사간 합의문을 공개하고 LG가 약속을 어겼다고 반격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재로 양사 CEO(최고경영자) 회동이 한차례 있었지만, 양사 모두 "앞으로 다시 만날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역시 어렵게 주선한 CEO 회동이 결렬되자 중재에 다시 나서는데 주저하고 있다. 이에 따라 ITC 소송 결과를 지켜보며 국내에서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장기간 펼쳐질 전망이다.

이 경우 천문학적인 소송비가 투입되는 등 양사 모두에게 소모적일 가능성이 높다. 합리적인 선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에 양사 경영진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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