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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김지영'은 어떻게 사회에서 내쳐졌나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9.10.3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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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
역사에 나비효과 일으킨 사랑 이야기에서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맥락' 읽기





최근 극장가에선 '82년생 김지영'이 흥행에 성공하며 원작 책에 이어 이슈가 됐지만, 100년 전 이땅에선 이와 비슷하게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실존 인물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1896년 태어난 그는 3.1운동을 배후 조종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는 등 숨은 독립운동가로서도 활동했지만, '신여성'으로서 남성 중심 사회에 도전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에요."



1918년 학교 친목회보에 쓴 글을 보면 나혜석이 어떤 인물인지 짐작이 된다. 1920년 그는 자신을 좋아하던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할 때 놀라운 조건을 내걸었다. "평생 지금처럼 나를 사랑해달라.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 시어머니와 전처의 딸은 별거하게 해달라."

지금보다 더 가부장적이고 효를 중시하는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다. 세상의 손가락질이 시작됐다.

3년 뒤 출산, 육아에 대한 힘들었던 감정을 솔직히 적은 '모된 감상기'는 반박 투고까지 불렀다.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는 표현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 것이다. 쏟아진 비난에 나혜석은 직감적으로 쓴 "제일 정직한 말"이라고 반박했다.

그에 대한 세상의 비난이 극에 이른 건 불륜 문제였다.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혼에 이른 나혜석은 이후 1934년 잡지에 '이혼고백장'을 공개한다.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나 일반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반성문이 아닌 당당한 신여성의 글에 세상의 비난은 이어졌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불륜녀가 된 그는 그림 활동에도 제약이 생겼다. 홀로 남겨진 나혜석은 이후 병까지 얻었고 무연고자로 사망했다.

권경률 작가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 한 나혜석이 "가부장 사회로부터 조리돌림 당하고 죽음의 길로 내몰렸다"고 평가한다. 쓰면서 가장 먹먹했던 부분이라고 하기도 했다. 책에는 당시 나혜석과 우리 사회 모습이 더 자세히 담겼다.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는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 나비효과를 준 사랑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의 행간을 읽게 해준다. 사랑은 사사로운 일이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기도 하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조선시대 성종이 양반가 여인 어우동을 간통을 이유로 처벌 규정보다 훨씬 센 극형에 처한 속사정, 숙종이 자신의 사랑(장희빈)을 앞세워 피의 정계개편을 펼친 일 등 10가지 이야기가 권 작가의 독창적인 시각을 통해 펼쳐진다.


권경률 작가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머니투데이에 '사극 속 역사인물' 99회 연재했으며, '조선을 만든 위험한 말들' '드라마 읽어주는 남자' 등의 저서가 있다. 팟캐스트 '역사채널 권경률'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권경률 지음. 빨간소금 펴냄. 392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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