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② 그들 각자의 김지영

임수연, 송해나, 황효진, 장영엽, 전연주, 신지예 ize 기자 2019.10.2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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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② 그들 각자의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을 보며 가장 공감 갔던 에피소드는 고등학교 수학 문제집을 풀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서울대 공대 출신 애엄마의 사연이었다. 그의 인생은 분명 나와 닮았을 것이다. 13살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앉아서 수학 문제만 6시간씩 풀었다. 17살 때, 수학의 정석보다는 초끈 이론에 관한 책을 읽는 게 좋았고 과학 잡지를 탐독하다 딴짓을 한다고 오해한 선생님께 등짝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여자애 같지 않게 너는 왜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니?” 소리를 지겹게 들으며 스스로가 여성성이 부족한 건 아닌지 고민했다. 대학원에 가면 남자가 훨씬 유리하네, 여성 과학자가 적은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네, 교수 될 확률도 높네 하는 식의 말을 학부 1학년 때부터 주워듣고 위축됐다. “여자가 물리학을 전공하다니 멋있다"라는 말이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만난다. 지금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밖에서 떠드는 단정적인 말에 덜컥 겁을 먹은 것도 적잖은 원인을 제공했다. 그래서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는 미래를 좀더 야심차게 꿈꿔보지 못한 게 아쉬운 순간이 문득, 가끔씩 찾아온다. 왜 고등학교 때 ‘물리2’를 선택하는 남학생보다 여학생 수가 현저하게 적은 걸까? 왜 여전히 ‘남자는 이과, 여자는 문과’ 같은 헛소리가 학교 현장에 존재해야 하나? 한국에서 최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서울대학교 김빛내리 교수와 같은 여성이 그 주인공이 돼 많은 여학생의 롤모델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그들이 “안 될 거야”라며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임수연(‘씨네21’ 기자)

출산 후 한동안 컵을 못 들었다. 아기가 50일이 될 때까지 물 담은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빨대를 꽂아 물을 마셨다. 침 맞으면 나아질까 한의원에 갔다. 출산 후 손목이 너무 아파 컵을 들을 수가 없다고, 4kg도 안되는 아기를 안는 게 너무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하니, 내 부친 나이 쯤 돼 보이는 한의사는 엄살이 심하단 듯 출산했다고 해서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했다.
육아휴직 서류를 떼러 아기와 함께 회사에 갔다. 사람들은 아기가 사랑스럽다며 한껏 반겼지만 아기를 낳아 본 동료들은 내 몸을 제일 걱정했다. 출산 후 못 먹고 못 쉬어 야위고 파리해진 나를 보며, 누가 뭐래도 네 몸을 돌봐라,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조언했다. 옆에서 듣던 남자동료는 무슨 소리냐며, “해나 씨 벌써 아가씨 몸매로 돌아온 거 보라”라며 독하다며 윙크했다.
아기를 돌보다 보면 손을 계속 씻게 된다. 아기를 씻기고 젖병과 유축기를 씻고 내 손도 씻는다. 약해진 면역력 탓에 양 손바닥 가득 한포진이 나 집 근처 피부과에 갔다. 할아버지 의사는 스테로이드 쓰면 아무것도 아닌 병인데 모유수유 중이라 약 줘도 안 쓸거면서 뭐 하러 왔냐며, 발라도 효과 없을 거라는 약을 처방했다. 약국에 가니 자신도 아기 낳고 그런 일을 겪었다며, 엄마가 나으려면 좀 덜 씻고 아기 덜 만지라고, 그래도 된다고, 그래야 엄마가 산다고 했다.
자신이 김지영이었던 적이 없어서, 주변에 김지영이 없어서 김지영을 공감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엔 속지 않는다. 아기 낳고 몸 망가진 얘기 역시 사람들은 모르지 않는다. 지겨워서 안 들을 뿐. 변명이 가능했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레퍼런스가 있다.
송해나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저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이와 관련된 농담을 수도 없이 들었다.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아서 스물셋 아래가 가장 좋고, 스물넷도 괜찮지만 스물다섯부터는 별로라는 요지의 농담이었다.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니? 화를 내야 마땅했지만 당시에는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나이 먹는 일을 은근히 불안해했다. 취직할 때가 다가오자 불안은 점점 더 커졌다. 다시 취업난의 바람이 불어닥친다고 했고, 나의 전공은 취직이 잘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심지어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취직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선배들은 말했다. “여자들은 무조건 20대 후반 전에 취직해야지. 아주 잘 봐줘도 스물여덟이 넘으면 신입으로 들어가기 어려워. 남자들은 서른 초중반까지도 괜찮고.” 언론사 시험 준비생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도 매번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PD 지망생인데요, 신입 PD 중 서른 넘는 여자분도 계실까요? 제 나이가 좀 많아서…….” 이게 이상하다는 걸 몰랐던, 그래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두려웠던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 나와 다른 여성들이 겪었던 일은 부당한 것이었으며, 나이 든다는 건 전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황효진 (칼럼니스트)

‘82년생 김지영’에서 가장 감정이입 했던 대목은 지영의 직장생활과 관련된 에피소드였다. 지영은 일에 대한 안목과 감각을 인정받으면서도 정작 선망했던 기획팀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것이 비단 능력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였다 하더라도, 가시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때때로 여성들을 좌절케 한다. 1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하며, 나는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유독 남자기자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드물게 받는 여자기자들을 많이 보아왔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것이 업계에 만연한 성차별의 한 사례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일 잘하는 기자를 소개해달라기에 여자 후배를 추천했는데 “남자기자는 없나요?”라는 얘기를 자주 듣지 않았더라면, 인터뷰를 하는데 노골적으로 “남자기자였다면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텐데”라고 웃으며 말하는 남자감독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좀 달랐을까. 남성들이 여전히 절대다수인 영화계에서, 여성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여성들이여, 능력만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길. 분노는 당신이 아니라 차별적인 사회에게로 향해야 할 것이다.
장영엽 (‘씨네21’ 기자)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자타 공인 명절 파이터니까. 파이터가 되기 전까지 나는 늘 여자 어른들과 부엌에, 남동생은 남자 어른들과 거실에 있었다. 벌써 내 손이 야무지다며 시집보내도 되겠다던 어른들은 남동생이 앞치마를 두른 모습엔 질겁했다. ‘옛날 분이셔서 그래. 네가 참아’ 하지만 내게도 더는 못 참을 순간이 왔다.
“남자가 부엌에 들면 고추가 떨어진다. 어서 나가 놀아!”
그렇게 어른들이 빼앗은 앞치마가 사촌 여동생 손에 쥐어진 것이다. 참을성 있는 김지영으로 살며 꾹꾹 눌러오던 화가 한 번에 폭발했다. 처음으로 언니 김은영이 되어 해묵은 감정까지 끌어와 집안을 발칵 뒤집었다. 다음날 할머니는 몸져누우셨고 나는 보란 듯 생전 처음 차례상에 제주를 올렸다. 담대하기 그지없었다.
간혹 있더라, 62년도 아닌 82년생 여성이 무슨 차별을 받은 세대냐고. 글쎄, 위의 내 사촌 동생은 2001년생이다. 82년생 김지영에게도 내게도 사촌 동생에게도, ‘시집가는 것’만이 아닌 미래에 대한 뜨거운 순정이 있다. 이런 식으로 자꾸 내 순정을 짓밟으면 다음 명절도 어쩔 수 없다. 조신함 묻고 전투력 따블로 가!
전연주(‘MBC MUSIC’ PD)

명절 때가 되면 우리 집에는 밥상이 두 개 펴졌다. 여러 음식이 가지런히 쌓아 올려진 큰 상에는 남자들이, 큰 상에 올라가지 못한 것들이 아무렇게나 놓인 작은 상에는 여자들이 앉았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남자 어른들은 TV 앞에 모였다. 여자 어른들은 뒷정리하기 바빴다. “왜 삼촌은 설거지 안 해?” 삼촌이 말했다. “제사를 올리는 건 남자의 일이고 제사를 차리는 건 여자의 일이야.”
중학교 입학통지서에는 여학생이 하면 안 되는 일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교복을 입을 때는 하얀 슬리브를 꼭 입어 속옷이 비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브래지어 색깔은 살구색이나 하얀색으로 맞춰야 했다. 정숙한 여학생이 되기 위해 타인에게 성적 호기심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첫 직장에서 함께 일한 선배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였다. 마흔 넘어 이혼한 우리 엄마 보는 듯했다. 퇴근이 늦을 때면 선배는 어린이집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되었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해요. 오늘도 아기 데리러 가는 게 늦어질 것 같아요.” 한 동료가 속삭였다. “안됐네. 그래도 저게 맞지.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해.”
선거에 출마하자 가시 박힌 말들이 쏟아졌다. 밥은 잘하니, 운전도 못 하는 애송이가, 여자애가 건방지게 뭘 안다고 그래. 서울 전역에서 서른 개의 벽보가 찢겨나갔다. 82년생 김지영은 곳곳에 있다. 다들 무엇인가 겪었고, 들었고 또 견디고 있다. 용케, 꿋꿋이.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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