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학생·학자 국제지원펀드(SAIH)는 영상을 제작해 '빈곤 포르노'를 비판했다. 영상 속 아이는 '마이클'로, '빈곤 포르노' 전문 배우다. 실제론 자동차를 끄는 등 유복하지만, 백인 자선 단체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한다. 이 영상은 '빈곤 포르노'를 비꼬고자하는 의도에서 제작됐다. /사진=SAIH 유튜브 캡처.
캄팔라는 잘 정돈된 알록달록한 건물 모습을 하고 있었고, 우간다 사람들은 화려한 색감의 메이크업으로 꾸미고 있었으며, 한껏 치장한 뒤 멋진 포즈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아프리카를 향한 편견이 극심하다며 이런 편견을 깨야한다고 주장했던 우리지만, 우리 안에도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부끄러웠다. 그 편견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 전경 /사진=알자지라 방송 인스타그램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빈곤·기아·질병 상황의 아동을 조명할 때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따라 아동이 빈곤이나 기아의 상징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는 TV에서 방영되는 국제 자선 캠페인 후원 광고 대부분이 숨을 헐떡이거나, 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앙상한 아이들, 파리 떼가 가득한 곳에서 힘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 등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후원을 이끌어내려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빈곤·기아 상황의 아이들이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한 건 맞지만, 이 아이들이 처한 상황 중 유독 최악의 상황만을 조명하는 게 문제다. 예컨대 치매 등 중병에 걸린 이들도 기저귀를 차고 있거나 허공을 바라보며 무기력하게 있는 등의 모습을 보이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다양한 모습 중 이부분만 강조해 조명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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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포르노'를 찍고자 하는 자선단체는 지난 수십년간 시청자들의 감정 역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점점 자극적인 화면을 담을 수밖에 없다. 현실이 그렇지 않으면 상황을 연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알레시오 마모의 '꿈의 음식' /사진=월드프레스포토 인스타그램
이 장면은 눈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음에도 가난 때문에 먹지 못하는 소년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묘사했다. 하지만 그가 월드프레스포토(World Press Photo) 재단 SNS에 사진을 게재하자, 곧바로 비난이 쏟아졌다. 촬영 당시 음식들은 모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모는 소년들에게 "먹고 싶은 음식들을 상상해보라"고 주문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이전에는 에티오피아 식수난을 촬영하려던 한 방송사와 개발 NGO가 에티오피아의 식수난을 촬영하려다 물이 깨끗하자 어린 소녀에게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을 마시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려고 꼬집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적도 있다.
이외에도 국내 한 개발협력NGO는 필리핀 모금홍보 방송을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여자아이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말끔한 옷차림을 한 이 아이가 방송 취지에 맞지 않다며 옷을 갈아입혀 논란이 일었고, 한 국제적 NGO는 '아동 노동 현장'을 고발한다며 수심이 깊은 강물에 베트남 아이들을 수차례 빠뜨렸다가 건져 비판받았다.
팝스타 에드 시런의 '빈곤 포르노' /사진=유튜브 캡처
세계적 팝스타 에드 시런이나 할리우드 배우 톰 하디, 에디 레드메인 등도 피구호자를 수동적이고 불쌍한 존재로만 묘사하는 '빈곤 포르노'에 등장해 백인 구원자 행세를 했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2017년 에드 시런은 노르웨이 학생·학자 국제지원펀드(SAIH)로부터 좋지 않은 모금 광고상 '러스티 라디에이터'를 받았다.
에드 시런은 영상에서 라이베리아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느낀 감정을 서술했는데, SAIH 측은 영상의 초점이 라이베리아 아이들이 아닌 에드 시런에게 맞춰 있었으며, 라이베리아의 정치적 상황이나 빈곤의 구조적 원인 분석은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그가 깊은 고민 없이 "아이들에게 임시거처를 제공하고 아이들을 호텔에 머물게 하고 싶다"고 발언한 것도 '백인 구세주' 행세라고 비판했다.
SAIH는 '빈곤 포르노'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있으며, 한가지 편견만을 강요하는지, 또 '빈곤 포르노' 속엔 얼마나 지독한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가 담겨있는지를 비판해왔다.
노르웨이 학생·학자 국제지원펀드(SAIH)가 제작한 '아프리카를 구하자!-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영상. /사진=유튜브 캡처
하지만 카메라가 걷히자 마이클은 얼굴에 냉소를 머금고 "일종의 비즈니스죠"라고 말한다. 이어 백인 연예인에게 "이런 자선 광고 처음 찍어보세요?"라고 묻고 입 안의 빵을 뱉으며 "연예인들은 너무 허접한 것들만 선물로 들고 온다"며 짜증을 낸다. '빈곤 포르노'를 비꼬는 이 영상은 현재 유튜브에서 150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TV나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자극적인 '빈곤 포르노' 후원 광고가 지난해 7월 제 40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 권고 결정 이후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자선단체에선 '빈곤 포르노'를 활용하고 있다.
아직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대안적 국제협력을 지향하는 민간 비영리단체도 생겼다. '아프리카인사이트'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고, 아프리카의 각 나라가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한다.
아직도 '빈곤 포르노'가 만든 이미지에 갇혀 아프리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면, 인스타그램에서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가나의 수도 '아크라',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자' 등을 검색해보는 게 어떨까. 나와 내 친구가 그랬듯 깜짝 놀랄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