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의 싱글앨범 제목이자 타이틀곡인 ‘고블린’은 이처럼 대중에게 사랑받기 어려운, 그럼에도 자신의 모습으로 사랑받기를 원하던 스스로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고블린’이라는 제목은 그가 기르던 털 없는 품종인 스핑크스 고양이의 이름이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괴롭힌다고 알려진 난쟁이 마귀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는 ‘고블린’ 발매 직후 있었던 팬미팅에서 “SNS에 고양이 고블린을 향해 '징그럽다', '자기 같은 것만 키운다'라며 무서워하는 글이 많았다”라면서 “(노래로)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고블린’의 가사는 ‘널 가득 안고 싶은 건 / 너의 맘의 하얀 안개 까맣게 물들일게’라며 하얀 색을 선으로, 까만 색을 악으로 여기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뒤집고 싶다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Don’t be afraid of the cat without fur’(털 없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마)라며 ‘just wanna tell you hi’(인사만 하려고 했을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 모습이 마치 털 없는 고양이나 마귀 ‘고블린’처럼 낯설게 보일지라도, 사실은 그저 진실하게 다가가려는 인사일 뿐이라는 마음의 표현. 실제로 설리는 ‘악플의 밤’에서 노브라가 이슈가 되는데도 사진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자 “무서워하고 숨어버릴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거(노브라)에 대해서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멈추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설리가 ‘악플의 밤’에서 외모 평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꾸준히 이야기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그는 외모에 대한 악플 혹은 평가에 대한 김지민과 산들의 대화를 듣다가 “칭찬도 평가”라는 생각을 밝혔고, 특히 마지막으로 방송된 회차에서 이탈리아에서는 외모 칭찬이 한국보다 조심스럽다는 알베르토의 이야기를 듣다가 “외모 평가를 정말 정말 심각하게 좀 안 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외모가 경쟁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연예산업에 종사하고, 그 스스로도 항상 외모로 화제가 되거나 사랑받았던 설리가 외모 평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악플의 밤’에서 f(x) 시절 ‘설리펀트’라는 별명이 붙었던 시기를 직접 언급하면서 “그때는 누가 저 쳐다보는 것도 싫었다”라는 고충을 이야기했다. ‘진리상점’에서도 설리는 오디션을 보고 외모 지적을 받은 팬이 “살 빼라고 적어달라”라고 요청하자 “너만 빼라고 얘기하는 건 싫어. 같이 다이어트 열심히 하자고 써줄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연예인으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외모 관리와 다이어트가 필요한 현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외모 평가가 사람을 존중하기보다 품평하거나 대상화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표현하고, 자신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누군가를 품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그의 모습들은 연예인 ‘설리’이기 이전에 인간 ‘최진리’로서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표현이면서, 남들이 당연하거나 옳다고 여기는 ‘하얀 안개’를 ‘까맣게 물들이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스스로 ‘꿈꾸는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힌 ‘도로시’의 가사에서, 설리는 자신이 꿈꾸던 다양한 자아들을 보여줬다. ‘질투의 도로시 / 사랑의 도로시 / 진리의 도로시 / 화려한 도로시’라는 가사를 노래하는 설리의 목소리를 감싸는 배경음악은 마치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가 떠난 모험을 표현하듯 느린 속도로 시작해 점점 빠른 비트와 다양한 멜로디들의 중첩으로 전환된다. 반면 다양한 ‘도로시’를 노래하는 설리의 목소리는 곡이 끝날 때까지 처음 시작된 리듬과 멜로디를 꿋꿋이 유지하면서 ‘미래를 위한 기도’라는 마지막 가사에 도달한다. 이는 마치 자신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걸음걸이를 꿋꿋이 유지하면서 진실한 ‘최진리’이기를 멈추지 않았던 설리의 생전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 설리 역시 도덕적으로 항상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f(x) 탈퇴 당시에는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고, 그 스스로도 인정했듯 실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설리는 항상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연예인의 위치에서 인간으로서의 진실함을 보여주려 했고, 자신이 생각하는 신념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특히 지난 1년 동안에는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을 인식하며 목소리를 냈고, 예능과 음악에서 스스로를 콘텐츠로 삼으며 점점 다양한 ‘도로시’들을 보여주던 중이었다. 만약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점차 찾아가는 그의 성장기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도로시는 이제 세상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영원한 모험을 떠났다. 이제 설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뒤늦게나마 ‘미래를 위한 기도’를 올리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부디 그가 지금 떠난 모험에서는 자신만의 걸음걸이를 멈추지 않을 수 있기를, 그리고 어떤 ’도로시’의 모습으로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