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최진리│② 남은 사람들의 몫

임현경 ize 기자 2019.10.2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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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 있냐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의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말한다. 떠난 이는 말이 없고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정말 그래야 했는지도 감히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언제 누가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를 기록하고자 한다. 상실의 시대에서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
ⓒSM엔터테인먼트ⓒSM엔터테인먼트


지금도 폭력을 휘두르는 당신, 인간입니까
설리는 지난달 SNS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도중, 낯선 남성들에 위협감을 느끼고 방송을 중단한 적이 있다. 지인과 만난 사적인 자리에서 스스로 ‘팬’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여러 차례 말을 걸어왔고, 설리는 거듭 거부 의사를 전했다. 설리는 “무서웠다. 저는 밖에 잘 못 나간다”라고 말했고, 옆에 있던 지인도 “올해 처음으로 (집) 밖에서 만났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성은 또다시 “한 마디만 해달라”라며 접근해왔다. 설리는 겁에 질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렸고, 지인은 “아까부터 거절을 많이 했다”라고 재차 거절한 뒤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계속해서 접근해왔던 남성과 두려움에 떠는 설리의 모습은 그가 일상에서 겪어왔던 불편을 짐작케 했다. 그러나 해당 사실이 기사를 통해 알려진 뒤,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돌아갔다. 포털사이트 댓글 대다수는 ‘과민반응이다’, ‘지인은 왜 웃고 있냐’ 등 설리 또는 설리의 지인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설리가 겪은 상황 자체를 ‘연예인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생활의 불편’이나, ‘스스로 초래한 문제’라고 주장하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논점을 흐리고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는 2차 가해, 3차 가해가 벌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안 변하더라고요.” 20대 여성 A는 설리 사망 이후에도 계속되는 악플들을 두고 “뭐가 문제인지,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악플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아닐지언정, 고인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는 지금 이 사회가 정상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설리뿐 아니라 그 주변인들을 향한 ‘사이버 불링’도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탈, 빅토리아 등 에프엑스로 함께 활동했던 멤버들을 비롯해 관련 연예인들의 SNS에 악플이 쏟아진다. SNS에 애도하는 글을 올리지 않아서, 애도글을 올려서, 설리와 친하다고 알려져서, 설리에게 했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애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을 저지를 명분을 위해 애도를 이용하는 것 아닌가 싶은 모습들이다. 20대 남성 B는 “설리에 대한 커뮤니티의 일부 게시물은 남자인 내가 봐도 거북할 정도로 선정적이었는데 사망 이후에야 삭제됐더라"라며 “반성은커녕 ‘누가 설리를 죽게 했는지’로 남 탓하기 바쁜 꼴을 보니 환멸감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악플’로 고통스러워하던 설리를 핑계로 또다시 ‘악플’을 재생산하는 일을 반복하는 인간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JTBC2 '악플의 밤' 캡쳐ⓒJTBC2 '악플의 밤' 캡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민
설리는 JTBC2 ‘악플의 밤’에 출연했을 당시 자신에게 쏟아졌던 모욕과 폄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걸그룹 에프엑스로 활동하던 청소년기에 설리와 엘리펀트(코끼리)의 합성어인 ‘설리펀트’로 불리는 등 외모 지적을 받았고, 성적 희롱 및 루머에 시달렸다. 이는 연예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이 겪는 문제이며, 그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해결이 시급하다'고 논의된 사회의 병폐다. ‘몸매’, ‘노출’ 등 설리라는 이름에 뒤따르는 연관검색어 또한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도 싫었다”라던 그가 어떠한 방향의 ‘관심’을 받아왔는지를 보여준다. 브라를 착용하지 않을 권리, ‘시선강간’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주장했던 그의 소신은 ‘논란’이나 ‘기행’으로 치부되곤 했다. 이에 대해 설리는 칭찬을 포함한 모든 외모 평가는 해선 안 되는 것이라 못 박으며 “인식이 변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저를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재미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설리의 말처럼, 그는 자신을 향한 관심을 영향력으로 바꾸고자 했다. 악플을 직접 반박했고 세태의 문제 제기를 위해 목소리를 냈으며 신지, 승희, 핫펠트 등 게스트로 출연한 여성 연예인들과 연대했다.

설리가 세상을 떠난 이후 며칠간 포털사이트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는 ‘설리 동향보고서’였다. 그의 사망 이후, 관할 소방서가 소방재난본부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동향보고서, 관할 파출소가 경찰서 및 경찰청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상황보고서가 모두 유출된 것이다. 기관의 업무 보고용이며 소방대원과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상황이 자세히 묘사됐기에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내부 직원들은 이를 어겼고 문건들은 순식간에 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유포됐다. 설리는 과거 병원에 갔다가 직원이 차트를 유출해 생성된 루머를 예로 들며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지 않은 경험들이 많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죽음 이후에도 또 다시 ‘원치 않게’ 흥밋거리가 되고 말았다.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부검의가 부럽다’는 식의 고인을 향한 성적 모욕이 끊이지 않았고, 유튜브에는 원혼과 대화했다는 무속인부터 조국의 장관직 사퇴 원인과 연관 짓는 억지주장까지, 설리의 죽음을 내세우며 ‘클릭’을 유도하는 콘텐츠들이 범람했다. 설리의 존엄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침해되고 있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유흥으로만 삼는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네이버 뉴스 검색결과 캡쳐ⓒ네이버 뉴스 검색결과 캡쳐
기자의 역할
설리 사망 이후 언론은 과거 발언부터 노출 사진, 시신이 운구되는 현장과 유족이 비공개를 당부한 빈소까지 관련 기사를 쏟아내며 최소한의 보도윤리도 지키지 않는 행태를 보였다. 기자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기자 개인‘만’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기레기’가 활동하는 배경엔 포털사이트의 기사 노출 시스템, 수익만을 좇는 언론사가 있다. 기사에는 광고가 붙고, 광고는 노출되는 빈도가 높을수록 수익을 내기 쉽다. 또한 언론사에게 포털사이트는 언론사 자체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는 누리꾼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기회로, 다른 많은 언론사들과 경쟁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슷한 내용의 다른 기사들보다 상단에 올라가기 위해, 포털 메인에 걸리기 위해, 언론사는 보다 빨리, 많이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뽑아낸다. 이 과정에서 취재 없이 이전 기사를 그대로 ‘복붙’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기도 한다. 여기에 아무런 취재도 없이,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뇌내망상’만으로 기사를 쓰는 일부 수준미달의 기자, 그런 기사도 조회수가 높으면 권장하는 데스크가 더해지면 독자에게 환멸을 주는 요즘의 미디어 환경이 완성된다.

“열애설 기사가 나와도 클릭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데스크가 그런 특종을 캐오라고 닦달하지 않을 테니까.” 모 인터넷 신문사 기자 C의 말이다. 기자는 스스로 어떤 사안을 다룰 것인지 결정하고 움직이기도 하지만, 윗선의 지시에 따라 취재 아이템을 정하고 기사를 작성하기도 한다. C는 “쓰레기 소리를 들을 만하기 때문에 자괴감이 든다”라면서도 “열심히 취재한 기사가 질 낮은 어뷰징 기사보다 주목받지 못하면, 데스크는 또 ‘기레기’ 같은 기사를 쓰라고 지시하고 악순환이 반복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 D 역시 '질 낮은 기사는 무관심이 답'이라며 “수요가 사라져야 공급이 사라질 것”이라 말했다. 기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레기’가 될 때도 있다. 기자가 쓴 기사는 편집국장, 편집장 등 편집 권한을 가진 ‘데스크’의 편집(데스킹)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기사의 맥락 자체가 완전히 뒤집히거나 자극적인 제목으로 바뀌는 일도 빈번하다. 데스크가 자신의 이름으로는 쓰기 민망한 기사를 평기자의 이름으로 출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민의 알 권리’를 ‘알아야 할 일’과 ‘몰라도 될 일’로 나눈다면, 포털사이트와 언론의 기이한 구조는 전자고 연예인의 위법하지 않은 사생활은 후자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기나 한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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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마음 돌보기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플 때 힘없고 아프면 능률이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내색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 좋겠습니다. 아티스트분들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니만큼, 프로 의식도 좋고 다 좋지만 사람으로서 먼저 스스로 돌보고 다독이고,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병들고 아파하시는 일이 없었으면, 진심으로 없었으면, 정말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유는 지난해 ‘2018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디지털 음원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연예인들은 직업 특성상 정신건강이 취약해지기 쉽지만,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하는 탓에 병원이나 상담센터 등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렵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 겸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예술문화 분야 종사자의 정신 질환 발병률이 여타 분야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대중의 반응을 살펴야 하는 극심한 감정노동자이기도 하다"라며 “문화 콘텐츠의 발전만큼 선진적으로 정신건강을 살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여러 기획사가 대학병원 및 전문가들과 연계해 소속 연예인들의 정신건강을 살피고 있다. 몇몇 기획사의 경우에는 아티스트 관리 팀과 심리 상담사, 소속 연예인을 꾸준히 관찰하고 대화하는 또 다른 전문가 등을 결합해 연예인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획사는 관련 복지가 미비한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는 ‘을(연예인)의 인성교육 및 정신건강 지원’ 조항을 통해 기획사가 연예인의 신체적 정신적 준비 상황을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법적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다.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1년부터 대중문화예술지원센터를 통해 청소년 연예인, 연습생들을 위한 심리상담을 제공한다. 기획사 또는 개인이 직접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심리상담사가 방문해 1:1 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2019년엔 83명이 1인당 평균 1.9회(10월 현재 기준) 상담을 받았다. 성윤리, 스트레스 관리 등 소양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대중문화예술지원센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심리상담의 경우 개인 신청도 받고 있지만 실질적인 케이스는 적다. 잘 알려지지 않아 그런 것 같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정신건강을 돌보는 일은 연예인뿐 아니라 그들을 아끼고 응원하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20대 여성 E는 설리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당시를 “처음엔 믿지 못했고, 그 다음엔 소리가 내어 나가는 게 싫어서 수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라고 회상했다. 20대 여성 F도 “내가 이렇게 살아있어도 되는 건가 싶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E와 F 모두 설리의 지인이나 팬이 아닌, 그저 설리를 지켜보고 때론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던 대중이었다. E는 설리의 아픔을 덜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후회가 돼, 구하라의 SNS에 응원 댓글을 달았다고 했다. 그는 “괜찮다고, 열심히 살 거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고서 그의 인스타에 응원 댓글을 달았다. 초라한 내 말이 그에게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다”라고 부연했다. 20대 여성 G는 “정작 큰 잘못을 저지른 남성들은 ‘무시하자’는 명목 하에 논외로 두면서, 여성에게만 무결해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밀었던 것 아닌가 돌아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백종우 센터장은 “고인의 행동에 공감했던 분들, 그를 아꼈던 분들이 겪는 상실감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면서도 “이미 스트레스 요인이 많이 축적돼 겨우 버티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절망적인 일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뭐 이런 일 가지고 그러냐’라고 생각하면 큰 상처가 될 것”이라 당부했다.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정책적 차원에서의 복지가 필요하다. 백종우 센터장은 이에 대해 “영국이나 호주에는 ‘헤드스페이스’라고 해서 지하철역이나 쇼핑몰 등에 만 25세 이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다”라며 “10대와 20대 사망원인 1위가 정신건강(자살)인데, 아직 우리사회에는 편견과 불이익 염려 등 도움을 청할 수 없도록 하는 장벽이 많이 있다”라고 했다. 또한, “마지막 순간이 아닌 아름답고 열정적인 삶 전체를 기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마음들을 모아 논의를 통해 더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할 사회적 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중요한 것은 ‘나’를 포함한 주변, 나아가 모두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다.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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