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식품 가격 급등락 때문 인플레-디플레 오가는 물가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2019.10.22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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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생각 다른느낌]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거나 내릴 때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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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0.4% 하락해 사상 첫 공식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까지 주장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체감물가를 언급하며 인플레이션이라고 했는데 어리둥절할 노릇이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주장이 나온 데는 신선식품지수 탓이 컸다. 신선식품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정하는 460개 상품과 서비스 중 배추, 상추, 사과, 배, 갈치, 명태 등 50가지 채소·과일·생선 가격으로 산정한다. 기상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변동이 큰 품목으로 주부들이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에 가깝다.



지난해 폭염 영향으로 9~11월 신선식품 가격이 크게 뛰면서 신선식품지수가 11% 가량 크게 상승했다. 이런 영향으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8월 평균 1.3%에서 9~11월 3달간 2% 수준으로 오르자 인플레이션이 주장이 제기됐다. 물가상승률 2%는 한국은행 목표치였다.

올해 디플레이션도 신선식품 가격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낮아지면서 1~7월 평균 0.6% 수준이었다가 8월 0%로 내려온 후 9월 –0.4%를 기록했다. 작년과 반대로 8~9월 신선식품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풍작으로 무, 상추, 수박, 복숭아 등 채소, 과일 가격이 30% 가량 폭락하면서 신선식품지수가 8월 -13.9%, 9월 -15.3%로 연속 하락했다. 여기에 고교 무상교육 확대로 납입금, 급식비, 학생복 가격이 크게 떨어졌고 석유류 가격 인하도 한 몫을 했다.



한국은 80년대 초반까지 평균 물가상승률 15%의 고물가 사회였다. 압축 성장에 따른 부가 현상으로 자고 일어나면 물가가 오르던 시절이었다. 1982년부터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기 시작해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2%대를 기록했고 2013년부터 본격적인 1%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2015년 물가상승률이 0.7%까지 떨어지자 디플레이션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6년 1.0%, 2017년 1.9% 기록하며 목표 물가상승률에 접근하면서 이런 우려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다 지난해 다시 물가상승률이 1.5%로 낮아졌고 올해는 9월까지 0.4%에 머물렀다.

현재 전 세계가 저성장 상황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무역 등으로 교역량이 둔화됐고 경기는 침체됐다. 제품 모듈화, 현지화로 교역단계도 간소화됐다. 온라인 쇼핑으로 저가 경쟁이 치열하다.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난해부터 앞다퉈 금리를 인하해 물가를 올리고 경기를 부양하려 애쓰고 있다.


국내도 경제성장률이 낮아졌고 미래는 급격한 인구감소로 소비와 투자가 더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정부는 앞으로 연구개발(R&D)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크게 늘리겠다고 밝혔고 한국은행은 7월, 10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해 1.75%에서 1.25%로 낮췄다. 정부도 경기 둔화에 대응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동시에 펴겠다는 방침이다.

그렇다고 현재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하락 뿐 아니라 생산, 소비, 고용 등이 동반 감소하는 현상이다. 9월 OECD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G20국 중 올해 5위, 내년 4위를 예상했다. 또한 10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141개국 중 13위로 2계단 상승했고 물가상승률과 공공부채 지속가능성으로 평가한 거시경제 안정성은 1위를 차지했다. 고용도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했다. 9월에 전체 고용률은 23년 만에 최고치, OECD기준(15~64세) 고용률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전체 실업률은 6년 만에 최저치, 15~29세 청년 실업률은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물가가 전년보다 오르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물가상승률이 적정한지가 중요하며 지속적으로 크게 오르거나 내리면 경제의 위험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선식품 가격 급등락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소폭 변동한다고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런 주장이 공포심만 유발해 경제를 위축시킨다. 이런 식이면 올해 남은 3개월 동안 물가상승률이 1%p 가량 오를 경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또 인플레이션이란 주장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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