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Eat]美서 '팁 안 주기' 실험…손님도 싫어했다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10.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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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 되는 '먹는(Eat)' 이야기]
2015년부터 美식당서 '노팁' 운동 불었지만 대부분 실패
음식값 오르자 손님 불만
팁 줄자 서빙직원 관둬

/사진=Flickr./사진=Flickr.


[인싸Eat]美서 '팁 안 주기' 실험…손님도 싫어했다
미국에 간 여행객들이 가장 땀을 흘릴 때는 아마도 '팁(tip)'을 줘야하는 순간일 겁니다. 특히 팁문화가 없는 한국 같은 나라에선 이러한 광경이 생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여행을 계획 중인 해외 여행객들은 잔뜩 겁에 질려서 인터넷에 '팁을 적게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어떤 상황에서 누구한테 얼마를 줘야하느냐' 질문을 쏟아내기에 바쁩니다.

미국에선 식당에서 식사후, 세전 음식 가격의 15~20%를 팁으로 주는 것이 '국룰(국민 룰, 암묵적인 규칙)'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인들도 얼마를 팁을 줘야하는지 제대로 모르거나, 팁을 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미국 크레딧카드닷컴이 2017년 1000여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5명중 1명은 식당에서 팁을 최소 기준치인 15%보다 적게주는 것으로 나타났고, 3명중 1명은 호텔이나 바텐더에게 팁을 전혀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팁문화의 문제점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뉴욕매거진의 음식전문매체 '그럽스트리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팁문화는 그야말로 인종차별, 성차별, 임금차별, 계급차별 등을 모두 담고 있는 구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야 서서히 바뀌고 있지만, 팁은 오롯이 홀서빙 직원이 홀로 독식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팁을 받지 못하는 주방 직원들과 홀직원간 임금격차가 2~4배까지 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팁을 많이 받는 고급레스토랑은 대부분 백인이 차지하고, 또 외모가 뛰어난 직원이 팁을 더 많이 가져가는 기형적인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말그대로 모든 차별의 집합체가 바로 팁 문화인 것입니다.


게다가 팁 역사는 노예제도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청산해야할 적폐와도 같은 셈입니다. 팁 문화는 17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시작됐습니다. 미국에서는 1865년 흑인 노예 해방 이후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인종차별적인 시선이 강하던 백인 주류사회가 흑인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걸 꺼려하면서 팁으로 이를 대체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수년간 레스토랑들이 '노팁(no-tip)' 실험을 해왔는데, 아직까지 결과는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노팁 레스토랑이 본격 등장한건 2015년부터입니다. 미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수의 바와 식당을 운영하는 테드 보글러씨는 아시아와 유럽 등지를 여행하면서 서비스요금이 음식값에 아예 포함된 방식이 훨씬 식당 주인과 직원들에게 모두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이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도 진출한 햄버거 체인 쉐이크쉑의 설립자이자 다수의 레스토랑을 보유한 유니온스퀘어하스피탤러티그룹의 수장 대니 메이어가 자신이 보유한 레스토랑 체인들이 팁을 받지 않겠다고 선포했습니다. 뉴욕 최고의 외식사업가의 도전에 미슐랭 셰프들이 운영하는 뉴욕의 빅네임 레스토랑들도 줄줄이 노팁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미 언론들은 대대적인 보도로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메이어는 "뉴욕 맨해튼의 생활비가 크게 오르면서 임금이 높은 홀서빙 자리에만 사람이 몰리자, 주방 직원 찾기가 힘들어졌다"면서 노팁 도입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실험은 4개월째부터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슐랭 스타 한국계 셰프인 데이비드 창 셰프 역시 노팁 시행 6개월째 이를 중단했고, 2년안에 다른 레스토랑들도 줄줄이 노팁 철회를 선언했습니다. 보글러도 결국 "마치 내 자신이 스탈린처럼 느껴졌다"면서 팁 정책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이터(Eater) 등 언론들은 "뉴욕 레스토랑의 미래가 사라져간다"며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문제는 식당을 찾는 고객과 홀서빙 직원 모두에게서 나왔습니다. 먼저 팁으로 많은 부수입을 챙겨가던 직원들이 임금이 줄어든다며 일을 그만두기 시작했습니다.

경험이 꽤 있는 홀서빙 직원들은 주방 직원보다 보통 2~4배에 달하는 임금을 받았는데, 더이상 팁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다른 일자리를 찾으러 떠난 것입니다.

메이어는 지난해 "2015년 노팁 정책 도입 이후 베테랑 직원들의 30~40%가 일을 그만뒀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메이어의 식당에서 일하던 한 직원은 팁을 받지 못하면서 연봉이 기존 6만달러에서 5만달러로 줄었다고 불평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직원들은 노팁 실험을 도입한 메이어와 다른 업주들을 향해 "노팁은 식당 주인들이 팁을 횡령하려는 음모"라며 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지난해 미 법원은 해당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흥미로운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식당 직원들이 공평하게 팁을 나눠가지는 법안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법안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2년 제안한 내용인데, 레스토랑업계의 반발과 소송 등으로 보류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엔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을 다시 밀어부 쳤는데, 이번엔 민주당이 "레스토랑 주인들이 팁을 훔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면서 반발해 또 무산됐습니다. 지난 4일 미 노동부는 이 법안을 다시 수정해 공개한 뒤 "일부 직원들이 팁을 독점하는 것을 막아야 전 직원들이 공평한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곧 이 법안과 관련해 공청회를 갖고 의견을 청취할 예정입니다.

노팁 정책을 도입하면서 음식값을 올리자 손님들의 불만이 커진 것도 문제였습니다.

식당들은 팁을 받지 않는 대신에 음식값이 약 20% 가량 인상했는데, 손님들이 팁을 주지 않는 것은 고려하지 않은채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슐렝 가이드에도 선정됐던 뉴욕 레스토랑 페도라는 노팁 실험 4개월만에 중단을 선언하면서 "음식값이 높아지자 손님들이 음식을 덜 시키기 시작했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뉴욕의 채식전문 레스토랑 더티 캔디를 운영하는 아만다 코헨은 "팁을 주나, 음식값에 포함하나 최종결제 금액은 같음에도, 손님들은 '음식값이 왜이렇게 비싸냐'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했습니다.

팁을 받을 수 없게된 종업원들이 동기부여가 떨어지면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불만도 나왔습니다.

/사진=Flickr./사진=Flickr.
미국의 노팁 실험은 규모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 선봉장에 서있는 것이 앞서 말한 쉐이크쉑 창업자 메이어 입니다. WSJ는 "메이어가 팁과의 외로운 전쟁을 펼치고 있다"고 했고, CNBC는 "메이어는 처음으로 식당내 흡연 금지, 주 4일 근무제를 비롯한 노팁 등 파괴적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팁 문화를 놓고 논쟁 중입니다. 미 정치권은 이제서야 팁을 직원들이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있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 언론에선 식사 후 팁을 20%줘야 하느냐, 아니면 폐지해야하느냐를 가지고 각자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메이어는 팁문화에 대해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건, 식당 종업원들이 팁 로또를 기대하면서 보이는 친절이 아니라, 진짜 그 일이 직원에게 메리트가 있어서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팁 빼곤 다 바뀌었다는 외식업계, 마지막 혁신을 이룰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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