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세]'일촌' 맺자며 진짜 도토리 보낸 '삼촌'..싸이월드의 추억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2019.10.19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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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미니홈피·일촌·도토리로 2000년대 국민 SNS '싸이월드'…개방형 SNS 등에 밀려 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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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세]'일촌' 맺자며 진짜 도토리 보낸 '삼촌'..싸이월드의 추억


# 중학생 시절 삼촌에게 소포가 왔다. 열어보니 도토리가 한 봉투다. 엽서에 적혀있던 삼촌의 메시지 "삼촌이야, 친하게 지내자. 너가 말했던 도토리 보내마."

2000년대 서핑 열풍에 휩싸였던 대한민국을 기억하는가. 강원도 양양군이 서핑 메카로 떠오르기 한참 전이다. 실제 바다는 아니었다.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바다를 마주한 싸이월드 해변에서 일촌들과 만나기 위해 파도를 타고 또 탔다. 우리는 싸이월드에서 나를 표현하고 지인들과 소통하며 추억을 남겼다. 일촌과 도토리에 대한 웃지 못할 일화는 우리 주변에서 흔했다.



30~50대에게 싸이월드는 일기장인 동시에 앨범과 같다. 그 시절 내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나만의 2000년대가 담긴 디지털 추억상자랄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처럼 싸이월드의 기억은 아련하다. 좋지 않은 소식으로 오랜 만에 소환된 싸이월드를 추억하자.

나만의 '미니홈피', 싸이월드를 '국민 SNS'로 만들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소개.싸이월드 미니홈피 소개.


1999년 등장한 싸이월드는 페이스북, 트위터에 앞선 1세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다. 한때 3200만명이 가입하고 매달 2000만명이 방문하는 국민 서비스였다. SNS란 단어조차 없던 시기에 나온 싸이월드는 인터넷 서비스를 넘어 2000년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싸이월드의 여러 요소들은 인터넷 시장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고,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는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미니홈피는 싸이월드 그 자체다. 2001년 9월 오픈한 미니홈피는 서비스 초기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싸이월드가 국민 SNS로 도약한 발판이다. 미니홈피는 명칭 그대로 사진첩, 게시판, 방명록 등 기능을 갖춘 팝업형 홈페이지다. 누구나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도구를 제공해 나만의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었다. 무료인데다 광고도 없었다. 물론 각종 꾸미기 아이템은 유료였지만.

미니홈피는 사용자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프로필 사진과 대문 글, 투데이 이즈(기분 아이콘), 배경음악으로 나를 보여줄 수 있었다. 이 기능들은 감성과 허세가 어우러지며 싸이월드만의 특별함을 선사했다. 사용자들은 멋진 사진과 명언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헤맸다. 당시 유행한 싸이월드 배경음악들은 아직까지 회자된다. 그만큼 사용자들의 애착이 강했다.


[스바세]'일촌' 맺자며 진짜 도토리 보낸 '삼촌'..싸이월드의 추억
'일촌'과 '도토리', 싸이월드 '폭풍성장'과 '몰락' 이끌다
일촌을 빼놓고 싸이월드를 추억할 순 없다. 실명제 커뮤니티를 고수한 싸이월드는 실제 친구들과 온라인 소통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실현한 열쇠가 바로 일촌이다. 싸이월드는 일촌이라는 온라인 인간관계를 내세워 미니홈피를 매개로 한 소통을 독려했다. 전체 공개와 비공개 사이에 '일촌 공개'를 둔 것 역시 주효했다. 싸이월드는 일촌 목록과 미니홈피로 연결되는 '파도타기' 기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일촌을 단문으로 표현하는 일촌평 역시 일촌 관계를 끈끈하게 다지는 장치였다.

싸이월드 서비스 설명.싸이월드 서비스 설명.
'도토리'는 또 어떤가. 싸이월드 화폐인 도토리는 가상통화(암호화폐)에 훨씬 앞서 대중화에 성공했다. 암호화폐가 여전히 화폐냐 아니냐 논란에 휩싸인 것과 달리 도토리는 싸이월드에서 화폐 역할을 수행했다. 1개당 100원인 도토리는 싸이월드 생태계에서 원화와 다를 게 없었다. 싸이월드는 도토리를 받고 스킨, 배경음악, 미니미, 미니룸 등 꾸미기 아이템을 판매하는 안정적 수익모델을 갖췄다. 당시 비게임 영역에서 도토리처럼 사용자들에게 직접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싸이월드는 도토리를 앞세워 게임보다 앞서 부분유료화 수익모델을 완성했다.

미니홈피와 일촌, 도토리는 싸이월드의 몰락을 가져온 한계점이기도 했다. 폐쇄성에 기반한 미니홈피와 일촌은 싸이월드의 핵심 서비스이자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일촌은 새로운 온라인 친구를 사귀기에 적절하지 않았고, 일촌들의 새 소식을 확인하려면 미니홈피들을 일일이 방문해야 했다. 싸이월드가 확장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할 때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개방형 SNS들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페이스북, 트위터로 빠져나간 사용자들은 다시 싸이월드로 돌아오지 않았다. 유료 아이템을 늘려 지나치게 도토리 장사에 몰두한 것 역시 싸이월드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먹통' 사태 빚은 싸이월드, 마지막까지 '사용자' 생각하길
지난 11일 먹통 사태 이후 싸이월드 로그인은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지난 11일 먹통 사태 이후 싸이월드 로그인은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
싸이월드는 지난 11일 먹통 사태를 빚었다가 14일 밤부터 복구가 이뤄졌다. 다음 달 만료를 앞뒀던 도메인 사용기한도 1년 연장됐다. 일단 급한 불은 껐다. '나만의 디지털 상자'가 사라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했던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싸이월드가 결국 서비스 종료 수순을 밟을 것이란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인력과 자금 사정이 열악해서다. 직접 찾아간 싸이월드 사무실은 대부분 빈자리였다. 완전한 서비스 복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싸이월드에서 올리겠다던 사과문은 감감무소식이다.

이미 싸이월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차례 중대한 실책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해외 진출 실패, 회원정보 해킹, 모바일 전환 실패 등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고, 오랫 동안 잊혀졌다.

염치 없지만 싸이월드의 마지막 선물을 기대한다. 디지털 추억상자에 담긴 사진들을 저장할 수 있는 기회다. 싸이월드가 마지막까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서비스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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