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바보야, 문제는 인구야

머니투데이 양영권 경제부장 2019.10.21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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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빈곤 퇴치를 위한 접근법을 인정받아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인구에 대한 통찰로 더 유명하다. 그는 1993년 발표한 논문 '인구 증가와 기술 변화(Population Growth and Technological Change: One Million B.C. to 1990)'에서 기술 진보는 인구 성장에 비례한다고 주장했다.

100만년 동안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크레이머 교수는 인구가 증가하면 지식이 더 빨리 쌓이고, 기술 발달을 가속화하며, 다시 인구가 늘어나는 순환이 이뤄진다고 봤다. '환경과 기술이 인구 증가를 제한한다'는 토머스 맬서스의 생각이 맞다고 해도 인구가 증가했던 이유다. 기술 접촉이 있기 전 유라시아 구대륙과, 아메리카 대륙, 호주 본섬, 타즈매니아 등 인구가 많은 순서대로 기술이 발달했다. 경제학자 겸 인구통계학자 줄리안 사이먼도 번영의 근원은 사람이라고 했다. 두뇌에서 나오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 두뇌 소유자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득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가정신’도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젊은 인구가 많을수록 기업가정신이 왕성해진다.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 사이트 씨트립 창업자 제임스 량의 분석에 따르면 가장 창의적인 나이대는 30~40대다. 지난 100년간 가장 위대한 발명 300개를 분석한 결과 30,40대 나이에 발명한 게 72%에 달했고, 이 중 30대인 경우가 42%였다. 또 25~34세가 가장 생산적이고 기업가정신 수준이 높았으며, 45세 이후 기업가정신은 빠르게 쇠퇴한다. 위험을 감수하기가 아이와 가족이 있는 중년보다는 잃을 게 별로 없는 청년 시절에 더 쉽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함께 30년간 '제로(0)' 성장을 해 온 일본을 보면 알 수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기업가는 초식동물이 됐다”는 말로 기업가정신의 쇠퇴를 우려했다.



소비가 왕성한 젊은 인구가 줄어들면 전체 인구가 줄지 않더라도 수요가 줄어들고 디플레이션이 일어난다. 물가가 하락하면 고정급을 받는 이들은 실질 구매력이 올라가 더 부자가 된다. 반면 어려워진 기업은 채용을 줄여야 하는데, 경직된 고용제도 상태에서는 신규 채용부터 줄인다. 결국 청년 소득이 줄어들게 되고, 수요는 더욱 가파르게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바로 우리에게 닥친 문제다. 한국전쟁 직전 2000만 명 수준이던 인구는 1970년에는 3143만 명에 달했으며, 1985년에 4000만 명, 2012년에는 5000만 명을 돌파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전쟁 직후 60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3만1349달러로 비약했다. 인구 증가가 기술 발전을 불렀고, 소득 증가로 이어졌다는 논리는 우리에게도 들어맞는다.

앞으로는 이런 선순환이 불가능하다. 생산연령인구는 2017년 줄기 시작했다. 통계청 전망대로라면 올해 자연인구 감소가 시작된다. 기술 발전의 아이디어를 낼 ‘머리’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사상 최저 출산율로 청년인구가 감소해 인구피라이드는 역삼각형 형태로 바뀐다. 기업가정신도 점점 약해지고, ‘D의 공포’는 일상이 될 수 있다. 크레이머 교수가 2016년 한국을 방문해 국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출산율은 놀라운 수준"이라며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힌 이유다.

당장 인구를 늘리고, 인구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이 기업가정신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고 청년들이 돈을 벌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활동으로 돈을 버는 것에 박수를 보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갖춘 만큼 고용의 유연성을 저해하는 제도도 그 어떤 제도보다 시급하게 개혁해야 한다. 현재를 바꾸고 단속하지 않으면 미래를 잃는다.
[광화문]바보야, 문제는 인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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