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여행 '고인물'에 물꼬 터야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19.10.16 05:30
글자크기
글로벌 여행업계를 주름 잡던 '여행 공룡'이 얼마 전 쓰러졌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 우리로 치면 조선 헌종대인 1841년 설립된 세계 최고(最古) 여행사 '토머스 쿡'이 파산했다. 호텔과 리조트, 항공사까지 거느리며 연간 1900만 명의 고객을 유치하던 글로벌 여행사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토머스 쿡은 근대적인 '관광'의 개념을 정립하며 전 세계 여행산업을 태동시켰다. 우리가 잘 아는 '패키지여행'의 시초다. 1845년 철도여행 상품을 출시했고, 10년 뒤에는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를 관람하는 4박5일 상품을 선보였다. 산업적 의미의 관광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178년 간 토머스 쿡이 쌓아온 역사가 조만간 마침표를 찍을 것이란 예상은 꽤 공공연했다. '최고(最古)'란 타이틀이 더 이상 '최고(最高)'라는 의미를 아우르지 못해서다. 온라인 플랫폼 경제가 도래했고 개별여행이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토머스 쿡은 오프라인 판매와 패키지여행 구조를 고집하며 고립을 자초했다. 몸집만 컸을 뿐, 트렌드에 둔하고 변화를 좇는데 민첩하지 못했던 것이다.



토머스 쿡의 파산은 패키지 중심의 전통적인 여행 생태계에 종언을 고한다. 이는 국내 여행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외여행 자유화 30년 만에 국내 여행업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어서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등 패키지 중심의 여행사들은 급변하는 시장환경과 글로벌 OTA(온라인여행사)의 거센 도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토종 여행사들의 행보는 토머스 쿡과 비슷하다. 패키지여행과의 시너지를 위해 호텔과 면세사업에 진출하지만 개별여행 트렌드에 대응한 플랫폼을 갖추는 데 무관심했다. 당장 큰 수익이 되지 않을 뿐더러 지금까지의 성공방식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다. 점점 젊은 여행객들과 멀어졌고, 이 사이를 아고다와 씨트립 등 개별여행에 최적화한 플랫폼을 갖춘 글로벌OTA가 파고들었다.

여행업계에선 변화를 꾀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말도 나온다. 이럴 때일수록 견고한 패키지여행 공략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계획할 때 2030세대는 스카이스캐너부터 검색하고 5060세대도 더 이상 여행사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토머스 쿡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180도 변화가 필요하다.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없다면 남는 건 만시지탄(晩時之歎) 뿐이다.
[기자수첩]여행 '고인물'에 물꼬 터야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