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악플에 일상 사라진 사람들…'제2의 설리' 막으려면

머니투데이 임찬영 기자 2019.10.1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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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살인 上]SNS 활성화로 일반인 대상 악성댓글 증가…30% 가량 사이버 폭력 경험, 교육 외에 인터넷실명제 도입 재검토

편집자주 악플에 시달리던 가수 겸 배우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거대 포털사이트와 사회관계망(SNS) 등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악플들이 또다른 '설리'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댓글망국론'이 나올 정도에 이른 악플 뒤에는 이를 양산하는 거대 포털 및 언론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삽화=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1.직장인 3년차 A씨(30·여)는 1년전 친한 동료에게 '불륜을 고발한다'는 글을 받고 깜짝 놀랐다.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등장한 여성의 회사와 부서, 나이가 자신과 같아서였다. 댓글에는 '죽어라', '나쁜X' 등 입에 담지 못할 악플 수십개가 달렸다. 악플과 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A씨는 결국 우울증에 빠졌고 6개월 휴직 신청을 했다.

#2.대학교 3학년생 B씨(23·여)는 지난해부터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 발단은 대학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00과 0반 여신 알고 보니 성형미인'이라는 글이다. 실명은 없었지만 자신으로 특정될 만한 내용이었다. '성괴(성형괴물)였네', '과거 사진 찾아 봐라' 등 댓글을 보고 상처를 받았다. 불안감에 시달린 B씨는 지난달부터 정신과 병원을 다니고 있다.



악성댓글(악플)은 더 이상 연예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일반인들도 악성 댓글의 표적이 되고 있다.

15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방통위가 6162명을 대상으로 사이버폭력 경험률을 조사한 결과 32.8%가 온라인에서 사이버폭력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는 전년 대비 6.8%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10명 중 3명이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셈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 한 수사과장은 "예전에는 연예인 등 유명인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대학교 SNS나 사내 인터넷 게시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저격 글이나 악플에 시달려 경찰서를 찾아오는 일반인들도 꽤 많다"며 "피해자들도 10대 청소년부터 대학생, 직장인, 주부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악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적 측면이 강조돼야 한다고 말한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교육 차원에서 온라인상 교육 커리큘럼을 강화해야 한다"며 "도덕적인 규범과 인식에 대한 교육이 아직 없는 상황이어서 공교육에서부터 인성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순히 해당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교육적인 법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이나 벌금 외에 강제로 인성 교육을 받도록 만들어 인식의 틀을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병철 선플운동본부 이사장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플(착한 댓글) 의무 교육을 시행해 인성 교육을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며 "교육적인 정책이 시행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 25) 자료사진./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고(故) 설리(본명 최진리, 25) 자료사진./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일부 전문가들은 인터넷 익명성이 이런 상황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라며 '인터넷 실명제' 재도입도 얘기한다.

'인터넷 실명제'는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확인된 사람만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제도다. 2007년 시행됐지만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5년 만인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져 효력이 상실됐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고 언로도 열려있는데 과거 우울했던 시절 생각만 가지고 익명성을 보호해주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익명에 숨어 본인이 하는 일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명제를 통해 이런 부분이 정제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도입돼 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와 균열을 막아야 한다"며 "인권과 명예가 훼손당하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현 상태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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