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가 떠났다, 그제서야 악플이 멈췄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9.10.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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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이슈+]성희롱·비하·인신공격 등, 숨진 뒤에야 숨죽인 '악플'…SNS 실시간으로 나르던 기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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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가 떠났다, 그제서야 악플이 멈췄다


"삼류 XXX 같은 애. 덜 떨어진 X. 일부러 벗네."

"그냥 노출증 환자."

"완전 노리고 했던데?ㅋㅋ"



"일부러 저러는 듯."

'당당한 여성'이 되고 싶단 설리에게, 악성 댓글(이하 악플)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여성을 억압하는 브래지어를 당당히 벗은 그에겐 '성희롱'과 '조롱'이 쏟아졌고, 파격적인 패션엔 '노출증'이란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기사에 악플을 단 이들은, SNS까지 따라가 비방을 일삼았다. 어쩌다 설리가 응수하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듯 더 심한 악플이 쏟아졌다. 나중엔 "욕하는 것도 지친다"고 비웃을 정도였다.



'악플'은 14일 오후 5시쯤, 마침내 숨을 죽였다. 설리가 숨진 것 같단 소식이 전해진 뒤였다. 그는 스물 다섯 평생에 걸쳐서도 못 들은 좋은 댓글을, 떠난 뒤에야 마음껏 받았다. 그러나 여기에 설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매일 같이 활발하던 그의 SNS도 이미 멈춘 뒤였다.

활동 멈출만큼 힘들었대도…'악플'은 멎지 않았다


설리가 떠났다, 그제서야 악플이 멈췄다



설리는 이미 악플로 인해 힘들었단 사실을 고백했었다. 2014년엔 악성 댓글과 루머 등으로 힘겹다며, 연예계를 잠시 떠나 있기도 했다.

이후 배우로서 집중하는 행보를 보였지만, 악플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노브라(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와 관련해 소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당당하게 사진을 찍었고, SNS에 올렸다. 방송에선 "노브라로 다니는 건 단지 편해서"라고 솔직한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설리를 향해 쏟아진 건 온갖 악플이었다. 기사 댓글과 SNS, 커뮤니티 등에 설리 사진이 오르내리며 비방의 대상이 됐다. 당당한 행보는 '관종(관심을 이끌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비난 받았고, 소신 있는 발언은 '건방지고 불편한 것'이 됐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 속에 숨은 악플러들은 점점 강도를 높여갔다. 설리가 의연하게 대처하려 할수록 더 그랬다.

애써 웃는 모습을 SNS에 올리던 설리도 괜찮은 게 아녔다. 그는 방송에 출연해 "바깥에서는 밝은 척 하지만, 인간 최진리의 속은 어둡다"고 힘들게 고백했다. 양면성 있게 살고 있다고 했다. '악플의 밤'이란 프로그램에서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악플'은 멈추지 않았다.

14일 설리가 숨진 뒤에야 악플은 잠잠해졌다. 악플 대신 '추모'가 이어졌다. 과거 악플이 달린 기사엔 "이런 댓글이 설리를 숨지게 했다"는 글이 이날 뒤늦게 올라왔다. 해당 댓글은 조용히 추천을 받았다.

'가슴 노출' 등 자극적인, 실시간 기사들


설리가 떠났다, 그제서야 악플이 멈췄다
이슈가 된단 이유로, 조회수가 많아진단 명분으로, 설리 SNS는 기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설리가 사진을 올릴 때마다 적게는 수십개, 많게는 수백개씩 비슷한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도 자극적이었다. 지난달 28일, 실수로 설리가 인스타 라이브 방송서 가슴을 노출하자 '가슴 노출 논란'이란 제목을 달았다. 마치 설리가 잘못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노출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댓글들이 수백, 수천개씩 달렸다. 설리가 마치 의도한 것 마냥 비하하고, 비아냥대고, 성희롱을 했다. 그 장(場)을 마련해 준 건 기자들이었고, 기사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설리 연관 검색어는 늘 자극적인 것들 뿐이었다. '설리 3초 삭제 사진', '설리 노출' 등이 주를 이뤘다. 한 연예인으로서, 배우로서, 그 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존중 따윈 없었다.

언론계 관계자는 "설리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던 언론들은, 설리가 숨지자 이제 숨진 것 가지고 또 다른 장사를 한다"며 "설리가 떠난 뒤엔 또 누구겠느냐.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극적이고 조회수를 높일 기사 소재만 찾게 하는, 언론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악플', 막으려면 법적 대응 뿐…"연예인도 사람"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설리가 숨진 걸 계기로, 무분별한 '악플'을 막을 수 있는 구조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단 목소리도 비로소 커지고 있다.

그간 악플은 '표현의 자유'란 명분 하에 무분별하게 범람해 왔다. 익명의 공간에 숨어 특정인을 향해 악플을 퍼붓고, 이로 인해 연예인을 포함한 공인들이 고통을 호소해왔다. 심한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그 때뿐이었다. 온라인상 자유를 해치면 안된다는 주장과 그래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단 찬반 여론 사이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못했다.

현재로선 악플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법적대응 뿐이다. '명예훼손' 등의 명목으로 적극적으로 고소해야 겨우 대응할 수 있는 것. 하지만 그마저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예인들로선 쉽게 나설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한단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평론가는 "연예인이 공인이라고 해서 악플을 맘대로 달아도 좋은 건 아닌데, 우리나라에선 그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인식이 퍼져있다"며 "연예인도 공인이기 이전에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심하면 누군가 삶을 송두리째 뽑기도 한다.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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