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적금보다 낫다"는 종신보험, 쉽게 혹해선 안되는 이유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2019.10.1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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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나생명·신한생명 등 판매 '무해지 종신보험', 해지하면 한 푼도 못 받아…불완전판매 우려도

"은행 적금보다 낫다"는 종신보험, 쉽게 혹해선 안되는 이유


“보험료도 싸고 만기만 채우면 웬만한 은행 적금보다 수익률이 좋아요.”(GA 소속 설계사)

일부 보험회사들이 은행 저축상품 수익률과 비교하며 무해지 종신보험을 마치 저축성상품인 것처럼 판매해 불완전판매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해지형 상품은 보험료가 저렴한 대신 중간에 해지하면 환급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상품이다. 소비자피해가 커 해외에서는 보험료가 비싼 종신보험의 경우 무해지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세계 어디도 안파는 무해지 종신보험, GA서 ‘불티’=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라이나생명, 신한생명, 흥국생명, ABL생명 등 중소형 생명보험사들은 GA(법인대리점) 채널을 통해 무해지 종신보험을 팔고 있다.



경쟁에 불을 붙인 건 라이나생명이다. 지난해 말부터 무해지 종신보험을 GA 채널 주력상품으로 내세우면서 누적판매 약 8만건을 기록했다. 라이나생명의 상품이 ‘히트’를 치자 올 들어 흥국생명, ABL생명, 신한생명 등도 GA 채널을 통해 비슷한 상품을 내놓았다. 보험시장이 포화하면서 보험료를 낮춘 무해지·저해지 상품이 인기를 끌자 보험료가 비싼 종신보험까지 무해지 상품을 만든 것이다.

무해지·저해지 상품은 중간에 해지하지 않고 납입기간까지 보험료를 다 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험료로 기본형 상품과 동일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통상 10년, 20년의 납입기간 동안 경제적인 문제로 해지할 경우 그동안 낸 보험료를 전부 ‘날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10년이 지난 시점의 보험 유지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가입자 2명 중 1명꼴로 해지환급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놓일·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종신보험의 경우 월 보험료가 비싸기 때문에 중도 해지 시 피해도 더 클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사망보험금 1억원짜리 무해지 종신보험을 10년납으로 가입하고 매월 30만원의 보험료를 낸다고 할 때 가입 후 6년이 지난 시점에 경제적인 문제가 생겨 중도 해지하면 보험료를 2160만원 내고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해외 주요국도 현재 종신보험 무해지 상품은 팔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은행 적금보다 낫다"는 종신보험, 쉽게 혹해선 안되는 이유
상품 판매가 주로 GA채널을 통해 이뤄지면서 불완전판매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문제다. 일부 설계사들이 높은 수수료를 받기 위해 무해지 종신보험을 은행 저축상품과 비교하면서 ‘보험료 납입 10년 시점 환급률은 115%, 20년 시점 환급률은 135%로, 3%대 은행의 정기적금보다 유리하다’는 식으로 판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가 GA 채널을 대상으로 무해지 종신보험을 팔면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는 프로모션을 벌여 설계사들이 판매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납입기간 내 해지하면 해지환급금 지급이 안 된다는 설명은 대략적으로 빠르게 하고 넘어간 후 은행 정기적금에 가입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영업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당국 ‘경고’ 불구 거침없는 보험사, 재무건전성 ‘빨간불’=무해지·저해지 상품은 보험사 입장에서도 리스크가 크다. 보험사가 보험료를 산출할 때 예상하는 해지율보다 실제 해지율이 낮으면 보험사가 손실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일본 등 해외에서도 1980~90년대 무해지 상품을 판매하다 해지율 예측 실패로 일부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자 상품 판매를 중단했었다.


금융당국도 무해지·저해지 상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 특히 올 들어 1분기에만 무해지·저해지 상품이 100만건 이상 팔려나가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판매 시 가입자 자필서명과 환급금 안내 등 강화 등의 지시를 한 상태다. 하지만 영업현장에서 이뤄지는 불완전판매까지 막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보험업계 다른 관계자는 “무해지 상품은 계약유지율이 좋을수록 보험사가 손실을 보는 아이러니한 상품이라 실컷 팔아놓고 나중에 해지율 예측에 실패한 것 같으면 고객이 계약을 해지하도록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며 “은행의 ‘DLS(금리연계형 파생결합증권) 사태’처럼 소비자피해가 커지기 전에 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해 종신보험은 무해지형으로 만들 수 없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안전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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