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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또 버림받은 '중동의 집시'쿠르드…트럼프는 배신했나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19.10.1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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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선 위해 경합주 노동자층 잡으려 시리아 철군 강행…터키, 지정학적으로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 동맹

집을 버리고 대피하고 있는 시리아 북동부 주민들의 모습/ AFP=뉴스1집을 버리고 대피하고 있는 시리아 북동부 주민들의 모습/ AFP=뉴스1




# 10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마을 까미슐리에 터키군의 박격포탄이 쏟아졌다. 이 공격으로 12세 소년 무함마드 유수프 후세인이 숨졌다. 그의 일곱살짜리 여동생 사라흐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도 터키에 대한 보복 포격에 나섰다. 이같은 상황으로 로이터는 10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150여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쿠르드족 자치정부는 20만명 가까이 난민이 발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선 급한 美트럼프-‘선거 패배’ 터키 에르도안, 피와 표를 바꾸나

터키는 지난 9일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서 쿠르드족을 몰아내기 위한 ‘평화의 샘’ 작전을 개시했다. 나흘 만인 12일 국경지역의 라스 알-아인은 장악됐고 터키는 ‘(해당 지역이) 해방됐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7만여명의 쿠르드족 주민들은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국제사회는 터키의 군사행동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고, 불개입 방침을 선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은 이 비극의 불을 당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고도 시리아 철군을 강행했다. 시리아 주둔과 쿠르드족 지원에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은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마찬가지로 내년말 재선을 위한 대선 전략의 하나다. 대선의 승패를 가를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경합주 등의 노동자층을 사로잡기 위해선 그들의 자녀인 해외주둔 미군들을 본국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계산이다.

군사행동을 감행한 터키는 자국내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을 겨냥하면서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여권이 연일 선거에 패하고 있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쿠르드족 등 유럽행 난민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터키로서는 유럽 주요 국가들이 난민 유입을 이유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1일 주재한 ‘대테러 회의’에서 “누가 어떻게 말하든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라며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터키..웃고 있는 러시아

당초 백악관은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여야를 막론하고 동맹을 버렸다는 비난이 쇄도하자 양측을 중재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터키가 쿠르드족을 선제 공격했음에도 미국이 터키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하지 못하는 덴 지정학적 이유가 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 가운데 하나인 터키는 미 공군의 중동지역 작전 수행을 위한 핵심 기지들을 제공하고 있다.

또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지한 터키는 흑해의 러시아 해군이 지중해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터키가 만약 미국과 멀어져 러시아와 유착한다면 서방의 대 러시아 해상 방어막이 뚫리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쿠르드족이 이미 미국 대신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터키와 러시아와 접촉하는 등 러시아의 세력확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의 집시'로 불리는 쿠르드족이 약 4000만명에 달하는 적잖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한 것은 수많은 불운이 겹친 결과다.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4개국에 퍼져 살다 보니 쿠르드어는 2개 이상의 방언으로 갈라졌다. 자연스레 민족 통합이 어려워졌고,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자가 출현하지도 못했다.

독립국가 건설의 기회가 몇차례 있었지만 강대국들의 배신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제1차 세계대전 땐 독립을 약속한 영국을 믿고 오스만제국과 싸웠지만 배반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소련(러시아)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번엔 미국까지 쿠르드족을 이용하고 내팽개친 셈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조슈아 키팅 전 편집장은 "쿠르드족의 가장 큰 비운은 하필 미국이 초강대국일 때 독립을 추진했다는 점"이라며 "과거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기존 국경을 신성시하고 유지하려는 입장을 고수하며 새로운 독립국의 탄생을 사실상 차단해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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