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옷이 뽀송뽀송해 고맙다"고 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9.10.1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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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프로젝트' 마무리,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이들에게…장모님표 김치찌개에 "정말 맛있다"고

편집자주 지난해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며, 공감(共感)으로 서로를 잇겠다며 시작한 기획 기사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땐 설레기도 했고, 소외된 이에게 200여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질 땐 울었습니다. 여전히 숙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한 주는 '체헐리즘' 기사로, 또 다른 한 주는 '뒷이야기'로 찾아갑니다.

늘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사진=남형도 기자늘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에게, "옷이 뽀송뽀송해 고맙다"고 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빨래 건조대에 걸린 옷들이 잘 말라 있었다. 출근하느라 바삐 하나를 집어 입었다. 몸에 들어갈 때의 감촉만 느껴도 알았다. 뽀송뽀송했고 좋은 향이 났다. 칠칠치 못한 내가 흘린 얼룩들도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잘 알고 있었다. 아내가 빨래를 잘해준 덕분이란 걸. 일일이 냄새를 맡고, 그리 밝지 않은 세탁실서 옷들을 살피고, 세탁기를 돌리고, 꺼내어 또 말리고. 때론 늦은 밤까지 그리해준, 그 노고 때문이란 걸 너무 잘 알았다.


그날 저녁, 퇴근해서 돌아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옷이 얼마나 뽀송뽀송한지 아침에 기분이 다 좋아졌어. 빨래하느라 늘 힘든 것 잘 알아. 깨끗하게 입고 다니게 해줘서 고마워." 매번 반복해 해내는 이 일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충분히 얘기하고 싶었다. 아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쑥스러운 듯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는데 뭐"라고 말을 돌렸고, 난 다시 "그게 다 일일이 손이 가는 거잖아. 힘든 거야"라고 했다.
집안에 놓인 조명 하나가 불이 나갔다. 이사할 때 큰맘 먹고 샀던, 값비싼 조명이었다. 인테리어용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나무 식탁 위에 고이 설치해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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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나케 전구를 사와서 조명에 끼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0만원짜리 조명도, 1000원짜리 전구 하나가 없으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공간을 환히 빛내는 건 전구라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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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1000원짜리 전구처럼 느껴져 힘들더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기를. 나도 중요한 존재니까. 괜찮은 삶이니까./사진=남형도 기자집안에 놓인 조명 하나가 불이 나갔다. 이사할 때 큰맘 먹고 샀던, 값비싼 조명이었다. 인테리어용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나무 식탁 위에 고이 설치해뒀다.

부리나케 전구를 사와서 조명에 끼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0만원짜리 조명도, 1000원짜리 전구 하나가 없으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공간을 환히 빛내는 건 전구라고.

혹여나 1000원짜리 전구처럼 느껴져 힘들더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기를. 나도 중요한 존재니까. 괜찮은 삶이니까./사진=남형도 기자
조명받지 못한 삶에 대한 ‘피드백 프로젝트’를 했었다. 단골 떡볶이집 사장님에게 "최고 맛있다”고 칭찬했고, 버스 기사님에겐 “운전 잘하신다"고 추켜세웠고, 동네 미화원 여사님에겐 "늘 깨끗해서 참 좋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기사가 나갔고, 마음이 전해졌다. 많은 이들이 "눈물이 났다"고 했다. 1000원짜리 전구처럼, 별 것 아니라 여겼던 자신의 삶도 위로를 받았다고. 그 말에 나 또한 위로를 받았다.



그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남겨 놓고 있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 일상적이고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해 기꺼이 반응해주고 싶었다. 쑥스럽단 이유로 말을 아껴왔지만, 낯간지럽게 표현하고 싶었다. 이제 곧 연말이기도 하니까, 어떻게 보면 한 해를 마무리한단 핑계를 대서라도 그러고 싶었다. 사실 당연하지 않은 것이고, 무척 고마운 것이라고, 잘 알고 있다고 말이다.
좋은 전망의 리스본 숙소. 아내가 꼼꼼하게 검색해 찾은 곳이다. 여기에 도착해 이 광경을 보며 가장 먼저 한 건, 매운 컵라면 섭취였다./사진=속이 무척 느끼했던 남형도 기자좋은 전망의 리스본 숙소. 아내가 꼼꼼하게 검색해 찾은 곳이다. 여기에 도착해 이 광경을 보며 가장 먼저 한 건, 매운 컵라면 섭취였다./사진=속이 무척 느끼했던 남형도 기자
올해 처음으로 간 늦은 휴가가, 작은 계기가 됐다. 아내와 포르투갈로 떠났다가, 한글날(9일)에 돌아왔었다.

어디에 갈지, 뭘 먹을지 등 굵직한 여행 계획을 아내가 주로 다 짰다. 난 교통이나 유심, 환전, 인간 내비게이션 등 역할을 맡았다. 리스본 숙소는 빨간 지붕들이 훤히 내려다보였고, 창문을 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포르투 숙소도 동루이스 다리가 잘 보이는 위치 좋은 곳이었다. 음식도 가는 곳마다 맛이 있었다. 후기까지 꼼꼼하게 찾아봐 준 덕분에, 행복한 여행이 됐다. 여행에서 돌아와 "정말 고생 많았다"고 고마움을 표현했고, 아내도 같은 말로 따뜻하게 얘길 해줬다.
엄마에게 자식은 평생 아이인 것일지./사진=남형도 기자엄마에게 자식은 평생 아이인 것일지./사진=남형도 기자
엄마는 "해외 가서 전화하면 돈 많이 나온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도착하면 메시지 하나만 남겨달라"고 했다. 서른일곱 살 아들도,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 걱정스러운지. 그 마음이 느껴져, 걱정하지 않도록 연락을 했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에야 엄마는 "마음이 이제 놓인다"고 했다. "엄마가 걱정해준 덕분에 잘 다녀왔다"고 작은 고마움을 전했다.
아내에게, "옷이 뽀송뽀송해 고맙다"고 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돌아온 뒤 장모님은 저녁으로 먹으라며 '김치찌개'를 줬다. 외국 음식을 꽤 오래 먹어서, 아마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거라며. 매운 컵라면 10개를 챙겨갈 만큼 힘들었었고, 장모님표 김치찌개가 무척 맛있는 터라 순식간에 해치웠다. 삼겹살을 썰어 넣고, 굵직한 햄이 국물에 반쯤 고개를 내밀고, 육수 맛이 깊은, 훌륭한 김치찌개였다. 다 먹은 뒤 장모님에게 "어머님표 김치찌개가 많이 그리웠는데, 이제 살 것 같다"며 "늘 맛있는 반찬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25년지기 절친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포르투갈에서 포털 사이트 로그인이 안 돼 난감한 상황이 있었다. 해외 해킹을 막겠다며 차단을 해놨었는데, 그게 덜미가 된 셈이었다. 식당 예약 메일을 확인해야 하는데, 아무리 로그인 시도를 해도 안 됐다. 그래서 절친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차단 해제를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믿을만한 녀석이고, 연락이 빠르게 잘되는 터라 빠르게 그리 해줬다. "덕분에 살았다"고 "선물 사가겠다"고 고마움을 전했더니 "안 사와도 되고 돈으로 달라"는 농담 섞인 답이 왔다(넌 진담이겠지).
가까이 있으니 잘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늘 옆에 있다는 것을./사진=남형도 기자 아내가까이 있으니 잘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늘 옆에 있다는 것을./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늘 가까이 있어 잊고 살지만, 참 고마운 이들이었다. 그걸 되새기고 표현하고, 미소 짓는 그들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내게도 괜찮은 삶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일기에 적을법한 소소한 이야기를, 이리 상세히 적는 건 그게 가장 중요한 거라 여겨서다. 누구에게나 그런 이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들이 날 바라볼 때 발견하는, 문득 떠오른 사소한 표정 하나에서조차 다양한 감정이 묻어 있으니, 그걸 알아차리고 표현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더 행복한 일이 될 것 같아서 말이다.
피드백 프로젝트 기사에 남았던, 독자들의 댓글. 무대 뒤 평범한 삶에 필요한 건, "그건 꽤 괜찮은 삶"이라는, 작은 말 한 마디였던 것 같다./사진=기사 화면 캡쳐피드백 프로젝트 기사에 남았던, 독자들의 댓글. 무대 뒤 평범한 삶에 필요한 건, "그건 꽤 괜찮은 삶"이라는, 작은 말 한 마디였던 것 같다./사진=기사 화면 캡쳐
'피드백 프로젝트'에 달린 댓글 하나가 생각난다. 한 독자가 그리 남겼다. "눈물이 났다. 나도 누가 피드백 좀 해주면 좋겠다. 일 그만둔 거 잘했다고, 애 잘 키우고 있다고, 남편한테 손안 벌리려 애쓰고 있는 거 안다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 될 거라고."

거기에 답글 여러 개가 또 달렸다. "한 아이를 키워내는 것과 가정을 살리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넘치도록 정말 잘하고 있다"고, "멀리서나마 응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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