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노벨상 주간'… 이번에도 美 싹쓸이?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9.10.0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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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생리의학상(7일)·물리학상(8일)·화학상(9일) 시상식 개최

‘노벨상 주간' 막이 올랐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와 왕립과학원은 7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8일), 화학상(9일) 수상자를 연이어 발표한다. 본격 수상을 앞두고 알고 보면 재미가 배가 되는 ‘노벨상 관전포인트’를 짚어봤다.

노벨상/사진=노벨위원회노벨상/사진=노벨위원회


◇‘내 죽음을 알린 부고’에서 시작된 노벨상=노벨상의 시작은 잘못된 부고 기사에서 비롯됐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막대한 부를 챙긴 스웨덴 기업가 알프레도 노벨은 1888년 프랑스의 한 신문에 난 자신의 부고 기사를 읽게 된다. 신문사가 프랑스를 여행 중인 자신의 형 루드비히 노벨의 죽음을 잘못 알고 부고를 낸 것이다.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는 제하의 기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알프레드가 더 많은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을 찾아 돈을 모았다’. ‘죽음의 상인’이란 혹평에 충격을 받은 노벨은 거의 모든 재산을 기부, 노벨상을 제정했다. 그는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재산을 상금으로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1901년부터 약 118년을 이어온 노벨상은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노벨상 ‘美 독점’ 심화=노벨과학상 분야에선 지난해까지 607명(생리의학 216명·물리 210명,화학 181명)의 수상자가 배출됐다. 국가별 수상자를 살펴 보면 미국이 267명으로 압도적이다. 전체 수상자 중 절반에 가까운 43%를 차지한다.

미국은 노벨과학상 5명 이상 수상기관 명단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미국 하버드대(1위), 스탠포드대(2위), 캘리포니아공과대(4위), 매사추세츠공과대(MIT)(6위) 등이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기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노벨상은 유럽 국가들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종전 후 미국은 유대인 및 독일 출신 과학자를 공격적으로 영입, 기초과학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 지난 2017년, 노벨과학상 3개 분야 9명의 수상자 중 6명이 미국 국적자일 정도로 미국 과학자들의 싹쓸이는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국가별 수상자에서 우리와 가까운 일본은 총 23명(5위)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 부러움을 샀다. 일본 외에 아시아권에선 중국(3명), 인도(2명), 파키스탄(1명), 터키(1명)순으로 수상자가 나왔다.

◇공동수상·고령화 ‘뚜렷’…노벨상 수상까지 31.2년=노벨상의 최근 트렌드라면 공동수상과 수상자의 고령화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10년간 수상자의 노벨과학상 수상에 기여한 핵심논문을 바탕으로 수상 패턴을 조사한 결과 3인이 공동수상하는 사례가 거의 일반화됐다.


또 전체 기간 수상자 평균 연령은 57세로 나타났다. 핵심 논문 생산에는 평균 17.1년, 핵심논문 생산 후 수상까지 평균 14.1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노벨상 수상까지는 총 31.2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단한 ‘유리천장’…남성 수상자 97%=한국연구재단 통계에 따르면 노벨과학상 607명의 수상자중 587명(97%)이 남성이다. 노벨과학상은 여성에게 매우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까지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여성과학자는 12명, 물리학상 3명, 화학상 5명으로 집계된다.

지난해 수상자인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는 1963년 미국 마리아 괴퍼트 메이어 교수 이후 55년 만의 여성 수상자였을 정도. 이 때문에 노벨상계 ‘마틸다 효과’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같은 업적을 쌓아도 여성 과학자가 남성 과학자보다 과소평가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1893년 여성운동가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가 쓴 에세이 ‘발명가로서의 여성’(Woman as an Inventor)에서 처음 언급됐으며, 1993년 과학사학자인 마거릿 로시터가 ‘마틸다 효과’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여성인권 신장에 따른 변화가 최근 일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정책혁신팀에 따르면 1903년 이후 2000년 이전까지 여성수상자는 11명이었으나 2000년에서 2018년 사이에는 9명(45%)의 여성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이 같은 추세를 보면 앞으로 여성과학자의 활약이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프랜시스 아널드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가 역대 5번째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지난해 노벨과학상 수상자 8명 중 2명이 여성 과학자로 채워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관계자는 “노벨위원회의 변화와 함께 노벨과학상 후보자를 추천하는 과학계 주류 남성 연구자들의 인식 변화가 따르지 않는다면 노벨상의 성차별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노벨상 근접 과학자 17명=6일 최근 10년간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연구성과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 한국 과학자 17명이 선정됐다.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노벨과학상 종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연구진 중 화학 분야 9명, 생리의학 분야 5명, 물리학 분야 3명 등 17명이 노벨과학상 수상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중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화학 분야에서 김광수 자연과학부 특훈교수, 석상일, 조재필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특훈교수 등 3명의 교원이 이름을 올려 관심을 모았다.

김광수 특훈교수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노벨상 수준의 논문 피인용수를 기록했다. 그는 2018년 조사에서 지난 10년 간 노벨상 수상자들의 총 논문 수(310편)와 총 피인용수(24,944회)의 중간 값을 넘어서는 국내 연구자 2명 중 1명이었다. 석상일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 조재필 교수는 리튬 이차전지 분야에서 각각 뛰어난 연구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인정받았다.

연구재단은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 생산력·영향력 등을 기준으로 연구자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첫 번째 기준으로는 논문 피인용수 70회 이상, 국제학술지 네이처·사이언스·셀 등 3대 저널 중 1곳에 2편 이상 논문 게재, 상위 1% 논문 10편 이상 보유 등 3가지 실적을 살폈다. 또 최근 10년간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논문피인용수의 중간 값 이상이 되는 실적을 보유했는지도 검토했다.

이밖에 물리학 분야에선 그래핀을 연구하는 김필립 하버드대 교수, 탄소나노튜브 연구자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IBS 단장),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전자소자 전문가 안종현 연세대 교수 등 3명이 꼽혔다.

화학 분야에선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연구하는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 약물전달시스템 연구자 김종승 고려대 교수, 리튬전지 전문가 선양국 한양대 교수, 메조다공성 실리카를 연구하는 유룡 KAIST 교수(IBS 단장), 생체 이미징용 형광센서 개발자 윤주영 이화여대 교수, 나노입자 권위자 현택환 서울대 교수(IBS 단장) 등이 선정됐다.

생리의학 분야에서는 RNA 연구자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IBS 단장), 위암 표적항암제를 연구한 방영주 서울대 교수, 합성생물학 등 시스템 대사 공학 권위자 이상엽 KAIST 교수, 진핵세포를 연구하는 이서구 연세대 교수와 유전체 반복 변이를 발견한 이찰스 이화여대 교수 등 5명이 포함됐다.

연구재단 측은 "이번 조사에서 국내 연구자 연구 주제는 대부분 기초과학이 아닌 응용과학에 편중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국제 경쟁력 강화, 다양한 기술 분야의 발전과 활용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기초과학 활성화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분석결과는 정량적 지표에 근거한 자료로 노벨과학상 수상과의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크지 않을 수 있다"면서 "단지 노벨과학상 수상을 예측할 수 있는 분석지표 중 하나이며, 학계 내 연구네트워크, 인지도, 연구 주제 독창성, 기술과 사회적 파급력 등 다양한 요인들이 노벨상 수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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