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받던 구독모델 무비패스의 기승전亡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2019.10.0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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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즈 BTS(Biz & Tech Story)]
월 9.95달러에 매일 극장 영화 1편 보는 무비패스
'오프라인판 넷플릭스'라 불렸지만 결국 서비스 중단
구독모델에서 중요한 가격 정책의 실패
방만했던 경영진이 위기 초래

지난달 14일 서비스를 중단한 미국의 무비ㅐ스/사진=Moviepass지난달 14일 서비스를 중단한 미국의 무비ㅐ스/사진=Moviepass


월 9.95달러만 내면 매일 극장에서 영화 1편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돌풍을 일으켰던 미국의 무비패스(Moviepass). 영화 한 편 보는 값으로 한 달 내내 매일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오프라인판 넷플릭스’라 불리며 구독모델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지난해 6월에는 회원이 300만 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던 무비패스가 1년 여 만인 지난달 14일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다. 무비패스는 어쩌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걸까.



◇ 회비는 싸게 대신 ‘데이터로 돈 벌겠다’는 전략

2011년 무비패스가 창업했을 때만 해도 월 이용료는 50달러였다. 미국 영화티켓 평균가격이 8.89달러임을 고려하면 6편 값으로 최대 30편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6편을 봐야 이득인 이용권을 구매하는 고객은 많지 않았다.

2016년 넷플릭스 창업멤버였던 미치 로우를 CEO로 임명하고 ‘월 20달러에 일주일에 영화 1편’, ‘월 50달러에 매월 영화 6편’ 등 다양한 가격정책을 실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와 소비자 모두 만족하는 적정가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17년 데이터 회사 ‘헬리오스앤드메디슨 애널리틱스’가 무비패스를 인수하고 이 회사의 CEO 테드 팬스워스가 무비패스 경영에 참여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는 ‘월 9.95달러에 매일 영화 1편’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정책을 내놓았다. 대신 이용자들이 어떤 영화를, 언제 얼마나 자주 보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를 마케팅 회사에 판매해 수익을 올리겠다는 전략이었다. 데이터 판매로 수익을 벌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등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아주 영리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무비패스 회원이 올린 예매한 영화티켓 /사진=twitter무비패스 회원이 올린 예매한 영화티켓 /사진=twitter

◇ 가격 정책과 데이터 판매전략의 실패


저렴한 가격에 회원 수는 급증했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용자의 영화관람 비용을 무비패스가 전적으로 떠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영화 티켓 값을 무비패스가 정가로 영화관에 지급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월 회비 9.95달러를 내고 14달러짜리 영화를 20편 관람하면 무비패스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무려 270.75달러(280달러-9.95달러)가 된다.

가격차별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 가격정책도 문제였다. 무비패스의 가격은 오로지 9.95달러 한가지였는데 미국에선 지역마다 영화티켓 가격이 다 다르다. 2D영화를 기준으로 네브래스카가 8달러,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는 15달러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더 비싸고, 독립영화는 저렴하다. 회원들 입장에선 비싼 영화를 볼수록 이득이니 인기 영화에 티켓예매가 몰렸다.

설상가상으로 누가 더 영화를 많이 봤는지 내기를 하거나, 100편을 보고 인증하겠다는 영화 마니아들까지 등장하며 무비패스는 2017년 9월부터 1년 동안 매달 2000만 달러(239억7600만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매출은 4860만 달러(582억6200만원)였는데 손실은 이보다 2배 많은 9380만 달러(1124억3800만원)였다.

무비패스의 투자자였던 마이클 아리안도는 "본인들이 자선 사업가인줄 알거나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데이터 판매로 수익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페이스북 등의 정보유출 사건 등을 계기로 소비자들의 데이터 수집에 따른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3월 무비패스가 회원들의 위치정보를 수집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부 사용자들은 탈퇴하겠다고 항의했고 당일 주가는 8% 폭락하기도 했다.

무비패스 앱 /사진=moviepass무비패스 앱 /사진=moviepass
◇ 서비스 품질 하락에 회원들 도미노 탈퇴

그러면서 서비스 품질에 대한 고객 불만은 쌓여갔다. 무비패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플라스틱 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신규고객이 급증하던 시기 신청한지 한 달 뒤에나 카드를 받은 회원들이 속출했다. 고객센터에선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앱에선 오류가 자주 발생했고 특히 휴일을 앞두고는 티켓을 예매하려는 회원들이 몰리면서 다운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회원들 사이에선 “무비패스 티켓을 끊을 실력이라면 미국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티켓예매에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반면 대형 극장기업들은 무비패스와 비슷하지만 정교한 구독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극장체인 AMC는 월 19.95달러를 내면 일주일에 IMAX·4DX·프리미엄 영화 3편을 관람할 수 있는 ‘에이리스트(A-List)’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미국 전역 AMC 극장에서 이용가능하고 콜라 무한리필에 팝콘 사이즈 업그레이드라는 혜택도 추가했다.

결국 손실이 쌓이며 2018년 7월 고객들의 티켓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500만 달러(55억 원)를 급전하기도 했다. 급기야 가격정책을 놓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2018년 7월 월정액 9.95달러를 14.95달러로 인상했다가 8월에는 9.95달러에 매월 영화 3편으로 바꿨다. 올 1월엔 무비패스가 정한 영화 중 3편을 보거나, 제한 없이 2D영화 3편을 보거나, IMAX·3D영화를 포함해 3편을 보는 3가지 옵션을 내놓기도 했다.

실망한 가입자들은 이용권을 해지했고 지난 9월 기준 가입자는 20만 명까지 떨어졌다.

극장체인 AMC 앞에서 사진을 찍은 미치 로우와 테드 팬스워스 /사진=moviepass극장체인 AMC 앞에서 사진을 찍은 미치 로우와 테드 팬스워스 /사진=moviepass


◇ 회사위기에도 마케팅만 열중한 경영진

회사손실이 점점 불어나던 때도 경영진은 언론 인터뷰를 다니며 홍보에만 열을 올렸고 극장체인 AMC 앞에서 무비패스 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는 등 경쟁사들을 경계하기보다 비웃었다.

투자 받은 자금은 엉뚱한 곳에 쏟아 부었다. 뮤직 페스티벌을 열어 헬리콥터에 미국 전 프로농구스타인 데니스 로드맨을 태워 등장하게 하고, 호텔을 빌려 래퍼 빅 보이의 콘서트를 열고 무비패스 회원들을 초대했다. 하지만 서비스가 엉망인 상황에서 고객들이 이를 반길 리 없었다.

자금이 바닥난 2018년 7월 이후엔 경영진들 주도로 고객의 서비스 이용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미치 로우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회원들이 영화관에 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아이디어를 내게 했다. 고객서비스 부문에 근무했던 한 직원에 따르면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개봉을 앞두고 회사가 회원들의 비밀번호를 몰래 바꾸거나 예매 단계에서 오류가 나게 했다. 또 하루에 회사가 지출할 한도를 정해놓은 뒤 고객들의 총 티켓 값이 이를 넘으면 이후 예매하는 고객에는 ‘오늘 이 극장에는 상영영화가 없다’는 알림이 뜨게 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우리는 팔지 못할 걸 팔고 있다’는 말들이 오갔고 2018년 이후 40%가량의 직원들이 자진퇴사를 했다. 한 직원은 회사를 떠나기 전 동료들에게 “직원들은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지만 경영진은 보고 싶은 것만 봤다”며 “어쩌면 이들은 성공했을지 모를 ‘넥스트 넷플릭스’를 망쳤다”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고객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가격정책과 경영진들의 무능이 구독모델 역사상 가장 빠르게 회원을 모았던 무비패스를 몰락시킨 셈이다. 경영컨설턴트 에디 윤은 “구독모델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정밀함이 필요한 연주와 같은 것”이라며 “경영진 때문에 연주가 엉망이 되면서 영화산업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을 무비패스는 오히려 고객을 화나게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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