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마티나 샤카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머친드로나트 축제를 지켜보고 있다. 당시 마티나는 4살이었다. '쿠마리'는 연중 열세번의 특별한 경우에만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 악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살아있는 여신으로 힌두교도와 불교도 모두에게 추앙받고 있다. 2009.04.06/사진=뉴시스
쿠마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처녀'를 의미하는데, 네팔의 '처녀신' 숭배 문화의 대상이다. 행운을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힌두교도(네팔 인구의 87%)에게 추앙받으며, 불교도 네팔인(네팔 인구의 8%)에게도 왕국의 수호여신으로 다시 태어난 것으로 간주돼 숭배받는다.
네팔 전국엔 카트만두 쿠마리 사원에 거주하는 '로열 쿠마리'를 비롯해 도시별로 9명의 '로컬 쿠마리'가 있어 총 10명의 쿠마리스가 존재한다. 힌두교·불교 신자들은 자신의 어린 딸이 쿠마리로 뽑히는 것을 간절히 바란다. 이는 쿠마리 가족에게 엄청난 축복이 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쿠마리 가족들은 평생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기도 하고 말이다. 따라서 쿠마리가 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움에도 많은 지원자가 몰린다.
쿠마리는 석가모니와 같은 샤캬족 출신으로, 초경 이전의 3~6세 소녀 중에서 선발된다. 쿠마리가 되려면 32개 신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32개의 신체 기준은 다음과 같다. 단순히 예쁜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고 쿠마리만의 독특한 선발기준이 있다. △소라 껍질 같은 목 △사슴같은 허벅지 △송아지처럼 긴 속눈썹 △오리처럼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 △사자 같은 가슴 △부드럽고 낭창낭창한 손과 발 등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면 이제 전대 쿠마리의 물건을 찾게 하는 시험을 치른다. 사실상 랜덤게임에 해당하는 이 시험을 치르는 이유는 영적 능력이 있다면 탈레주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통과하면 공물로 바쳐진 소·돼지·양 등의 잘린 머리가 놓인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울거나 소리를 내면 탈락한다. 탈레주는 신적 존재이므로 감정표출을 하지 않는다고 봐서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연례 새해맞이 축제. 시민들이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를 가마에 태우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쿠마리는 가족들과의 접촉도 차단되며 사원 관계자들만 접촉할 수 있다. 인드라자트라 축제 등 일년에 12~13차례 정도 공식 일정을 제외하고서는 사원 외부 출입도 금지된다. 사원 내부에서만 이동하기 때문에 쿠마리 사원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쿠마리가 3층 격자 창문 사이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오래 기다린다. 쿠마리가 몇초씩 지나갈 때마다 사원 안뜰에서 쿠마리를 기다리던 신도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진다. 신도들은 쿠마리를 기다리며 인형, 과자 등을 준비해와 공물로 바친다.
질병에 걸린 이들처럼 일부 간절한 소원을 가진 이들은 쿠마리를 접견할 기회를 갖기도 한다. 이들은 쿠마리에게 어떠한 질병이 있다고 설명하며 쿠마리가 영적인 도움을 주길 빈다. 이 경우 쿠마리는 자신을 숭배할 수 있도록 발을 이들에게 내미는데, 이들은 쿠마리 발에 키스하며 소원을 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힌두교 신자들이 여신 시바의 화신이라 믿고 있는 세토 마친드라나스 마차 행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힌두 신자들이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를 경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같은 쿠마리 전통은 전세계에서 '아동 학대'라며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원에 격리돼 살아야 하고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2017년 9월엔 세살배기 여아 트리스나 샤카가 쿠마리로 뽑혔는데, 트리스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어린 나이부터 가족과 떨어져 엄격한 쿠마리 규율을 따라야 했다.
더 최악은 쿠마리 은퇴 이후의 삶이다. 쿠마리는 12세 전후로 초경을 시작하면 자격을 박탈당한다. 초경을 시작하면 신성(神性)이 다른 소녀에게 옮겨간다고 여겨 점성술사와 승려가 차기 쿠마리를 선발한다. 이는 힌두교에서 생리를 더러움의 상징으로 바라보는 데서 기인한다. (☞"더러워"… 생리 기간, 죽어나가는 여성들 [이재은의 그 나라, 네팔 그리고 생리 ①]참고)
힌두교는 종교적 의례에 따라 엄격하게 정결함(우월함)과 오염·더러움(열등함)을 구분한다. 이때 월경과 출산 등을 담당하는 여성은 생리혈과 출산혈 때문에 오염이 가능한 열등한 존재로 인식된다. 이에 따라 초경이 시작되기 전의 여성은 오염되기 전이므로 '찬양받아 마땅한 존재'로 여겨지고, 초경을 시작한 뒤는 '이미 오염된 존재'로 일종의 혐오의 대상이 된다.
고대 인도의 법률가들도 여성을 이렇게 바라봤다. 생리 이후의 여성은 사악하며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고, 오염 가능성이 있는 열등한 존재이며, 부모의 감시를 피해 임신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이다. (☞찬양하거나, 혹은 혐오하거나… 인도와 여성 [이재은의 그 나라, 인도 그리고 성차별 ②]참고)
이처럼 초경 후의 쿠마리는 이제 더 이상 쿠마리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여겨져 사원에서 내쫓긴다. 이전까지 모든 사회적 관계가 사원 안에 국한됐던 쿠마리는 무력한 존재로 남는다.
제대로된 공립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었기에 쿠마리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은 다반사다. 라슈밀라도 유사하게 말했다. 그는 "쿠마리 시절 의례에 쫓겨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며 "봉제인형이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쿠마리에서 물러난 후 학교에 들어가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과 같이 책상에 앉았지만 영어 등 (다른 아이들이 공부하는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해 창피했다"고 말했다.
연례 말 경주 축제를 맞이 한 네팔 카트만두에서 '살아있는 여신'인 쿠마리가 가마에 타고 축제 경기장으로 가고 있다. 축제장의 말발굽 소리가 악령을 몰아낸다. /사진=뉴시스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일도 잦다. 쫒겨난 쿠마리와 함께 하면 남자의 정기가 빨려나간다는 속설 때문이다. 원래 가족에게 버려진 쿠마리는 새 인연을 맺기도 쉽지 않다. '쿠마리 출신과 결혼한 남자는 1년 안에 죽는다'는 미신 때문이다.
최근 네팔에서는 쿠마리 관련 아동학대와 인권유린 논란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네팔 정부는 쿠마리 연금을 늘리는 등 은퇴한 쿠마리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세계 각국 인권단체의 비판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앞으로 네팔에서 쿠마리 전통이 지속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