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두 개의 불매운동

머니투데이 송기용 산업1부장 2019.09.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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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매운동으로 일본 기업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사사키 미키오 일한경제인회 회장)



25일 서울에서 폐막한 제51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일본 재계 인사들은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양국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한일 경제전쟁 이후 첫 대규모 회동이었다.

한국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 하지만 회의 참석자들은 "지금까지 마주하지 못했던 매우 어려운 국면"(고가 노부유키 노무라홀딩스 회장), "수출 규제로 파급과 충격이 있지만 공개할 수 없을 뿐"(오쿠다 사토루 아시아대 교수)이라고 털어놓았다.



일본 인사들은 특히 하나같이 한국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불매운동의 충격을 거론하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경제협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은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나라로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던 분쟁 초기의 호기롭던 반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같은 반응은 8월에 일본을 찾은 한국인 여행자 수가 반토막(48%) 나는 등 불매운동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미우리, 아사히, 산케이 등 일본 6대 일간지 중 4곳이 1면에 게재할 정도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한국 방문객이 90% 이상 줄어 렌터카·숙박 폐업 업체가 속출하는 쓰시마섬에 긴급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일본 불매운동이 이처럼 큰 힘을 발휘한 것은 국민의 광범위한 공감대 속에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양보와 인내가 한국 정부의 항의에도 꿈쩍 않던 일본 정부와 재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성공은 최근 여론 지탄 속에 무산된 불매운동의 반면교사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업계 초유로 자사 차량 불매운동에 나섰던 한국GM 노조가 그 주인공이다. 노조는 사측이 미국GM에서 들여오는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트래버스'와 픽업트럭 '콜로라도' 불매운동을 예고했다. 하지만 '제 발등 찍기' '자해행위'라는 격한 비판에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수입차 판매 증가->국내 생산 감소->구조조정'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자사 차량이라도 판매를 막겠다는 노조 주장은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행태라는 비판을 받았다. 트래버스, 콜로라도 수입은 군소 메이커로 전락한 한국GM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한국GM이 생산하는 기존 차량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내수판매 4만8763대로 17.2% 감소했다. 특히 수년간 절치부심한 현대기아차가 팰리세이드, 베뉴 등 신차를 앞세운 대공세로 점유율 85%에 육박해 '현대기아 vs 수입차' 양강구도가 형성됐다. 이대로 가면 지난해 폐쇄한 군산공장을 따라 한국GM 전체가 고사위기에 몰릴 수 밖에 없다.

이런데도 노조는 △기본급 5.65% 인상 △성과급(통상임금의 250%) △사기진작 격려금 650만원을 요구하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5년간 4조원대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8200억원의 국민 혈세까지 투입된 기업 노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행태다. 국민의 공감대는 커녕 냉소를 받은 것도 당연하다. 한국GM 노조가 진정 직원들의 고용을 안정시키려 한다면 사측에 고용보장을 약속받기 위해 투쟁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

[광화문]두 개의 불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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