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엔지니어가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강동야학에서 고등교과 과정 중 지구과학을 직접 제작한 교재로 수업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김 엔지니어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최고의 성실교사로 통한다. 매주 같은 요일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지 않냐고 묻자 김 엔지니어가 뭐라 얘기하기도 전에 한 할머니가 "한 번도 늦거나 급하게 수업을 취소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반년 정도 야학을 잊고 지냈을 무렵 동료 선생님이 졸업식을 한다고 와달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갔는데 돌아보면 그날 제가 제 발목을 잡은 거죠."
가난에 치여, 여자라서, 형제자매 뒷바라지를 위해 배움을 미뤘던 할머니들이 뒤늦게 졸업장을 따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야학을 처음 시작했던 날을 떠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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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엔지니어는 "그때 강동야학을 제 인생에서 뗄 수 없게 되겠구나 했다"고 돌이켰다.
할머니들이 늦은 공부의 즐거움을 얘기할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김 엔지니어는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별자리 수업을 했는데 다음 수업 때 할머니 한 분이 손자에게 별자리 얘기를 해줬더니 '우리 할머니 대단하다'고 해서 너무 좋으셨다고 하더라"며 "힘들다가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에너지가 솟는다"고 말했다.
강동야학에서 강의 중인 김기훈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엔지니어. /사진제공=삼성전자
김 엔지니어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여건이 나아졌지만 2~3년 전만 해도 다른 야학 선생님들은 직장에 취직하면 야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며 "동료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저 역시 야학을 지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주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는 만큼 안타까운 기억도 적잖다. 빠짐없이 교실을 찾던 할머니가 어느 날 오시지 않을 때면 가슴이 먼저 덜컹한다고 한다.
퇴근길에 차로 2시간 달려와 3시간이 넘는 수업을 하고나면 피곤할 법하지만 김 엔지니어는 아들뻘 선생님을 손꼽아 기다리는 할머니들에게 오히려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곤지암에서 강동까지 6년째 야학에 오시는 어머님이 계세요. 일흔이 넘으셔서 야학 최고령 학생이시고 당뇨까지 앓으셔서 움직임이 편치 않으신데도 늘 버스를 타고 오시거든요. 그렇게 배우러 오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뭐든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죠."
김 엔지니어의 바람은 언젠가 지하 강의실을 벗어나는 것이다. 장마철이면 벽지가 들리고 나무가 썩는 환경이 못내 가슴 아프다. 김 엔지니어는 "지상으로 올라가 좀더 쾌적하게 공부할 여건이 되면 좀더 많은 늦깎이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갖지 않겠냐"며 "그렇게 되면 매주 느끼는 무거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새로운 사회공헌 비전인 '함께 가요 미래로! 인에이블링 피플(Enabling People)'을 발표, 임직원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