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공백기·모범수…화성 용의자 의문점 3가지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19.09.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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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이슈+]33년 만에 밝혀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그를 향한 궁금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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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사진=뉴스1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사진=뉴스1


'최악의 미제사건'이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실체가 드러났다. 용의자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24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이모씨(56). 화성에서 첫 사건이 일어난 지 33년 만에 유력한 용의자가 확인된 것이다.

국민적 관심사를 끌었던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는 모양새지만, 용의자에 대한 의문이 상당하다. 과거 경찰 수사에서 확보된 용의자 혈액형과 이씨의 혈액형이 달라 용의자 특정 결과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또 흉악범인 이씨가 교도소에서 1급 모범수였다는 점, 화성 사건 10차 범행과 처제 살인사건 사이의 공백 등도 궁금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B형이라던 범인, 잡고 보니 O형?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를 33년 만에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DNA(유전자) 분석 기술이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수사 기법으로는 DNA의 주인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최근 DNA 분석기술 발달로 남성 용의자를 특정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7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DNA 분석을 의뢰했고, 채취한 DNA와 일치한 대상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DNA를 감정하는 과정에서 용의자의 혈액형도 확인됐다. 사건 당시 물품에서 채취된 성분을 분석한 결과 용의자의 혈액형은 O형으로 밝혀졌다.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범인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다. 범인의 정액과 혈흔·모발 등의 감정을 통해 나온 결과였다. 기존에 알려진 범인의 혈액형과 유력 용의자 이씨의 혈액형을 불일치한 것을 두고 이씨가 진범이 맞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화성 사건의 첫 번째 피해자의 유전자 분석을 맡았던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교수는 20일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혈액형 타이핑이 잘못될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옷에 묻어있는 적은 양으로 검사하면 미스 타이핑이 될 확률이 더 높다. 또 단백질 변질로 인해 혈액형 타이핑이 잘못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DNA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는다"며 "옷에 묻어 있는 DNA가 용의자의 것과 똑같이 나왔다면 잘못될 확률이 없다. DNA는 일부러 갖다 맞추려고 해도 남의 것과 똑같이 맞출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은 "당시 우리나라 과학수사 수준은 기껏해야 혈액형 구분 정도였다. 정액이 나와도 이 정액 주인의 혈액형을 맞추는 정도"라며 "혈액형은 4분의1 확률의 접근 수단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냉각기? 추가 범행?…10차 사건과 처제살인사건 사이 3년 공백
혈액형·공백기·모범수…화성 용의자 의문점 3가지
마지막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건 1991년, 이씨가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건 1994년이다. 두 사건 사이 공백은 약 3년. 그 당시 이씨의 행적은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씨가 추가 범행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마지막 화성 사건이 벌어진 91년 4월부터 이씨가 처제를 살해한 93년 12월까지 유사한 방법으로 여성을 강간 살해한 미제 사건이 경기와 충청 지역에 꽤 있었다. 그 사건들도 이씨가 범인지 아닌지 추가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추가 범행의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연쇄살인의 '냉각기'였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혼해 아들을 얻는 등 이씨 개인 사유로 인해 3년간 범행을 잠시 멈추게 된 것이다. 1995년 청주 처제살인사건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1993년 당시 이씨는 2살짜리 아들을 남겨두고 가출한 아내에 대한 보복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를 미뤄봤을 때 1992년 무렵 아들이 태어났고, 그와 가까운 시기에 결혼을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씨는 성적 집착이 강한 사람이다. 결혼을 통해 안정적으로 성관계를 할 수 있는 파트너(아내)가 생기자 범행을 잠깐 멈췄을 수 있다"며 "하지만 강간 살인 등 극도의 자극적인 상황과는 자극 수준이 현저히 달라 아내와의 관계만으로 충분한 기간을 그리 길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흉악범은 어떻게, 왜 모범수가 됐나

부산 교도소 정문 모습/사진=뉴시스부산 교도소 정문 모습/사진=뉴시스
잔혹한 살인 행각을 벌인 이씨는 교도소 안에선 1급 모범수였다.

1995년부터 부산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해온 이씨는 24년간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징벌이나 조사를 단 한 차례도 받지 않는 모범수로 알려졌다. 4등급으로 이뤄진 수감자 등급에서 1급(S1)에 해당하는 모범수로 분류됐다고 한다. 꾸준히 작업장에 출역하면서 가구제작기능사 자격을 땄고 교정작품전시회 입상 경력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흉악범인 이씨의 의외의 모습은 '가석방'을 염두에 둔 행동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이수정 교수는 "모든 장기수는 가석방을 노린다. 1급 모범수인 이씨 역시 가석방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내부에는 강한 폭력성이 있지만 교도소에서는 외부적으로 이를 드러내지 않아 이미지 관리를 했을 수 있다. 조기 석방을 위해 잘 보이려 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씨는 1차 경찰 조사에 이어 2차 조사에서도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이씨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함에 따라 사건 수사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57명 규모의 대형 수사본부를 출범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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