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개구리소년·이형호군 유괴…'그 놈'잡아도 처벌 못한다

머니투데이 백지수 , 한지연 기자 2019.09.2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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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살인의 추억' in 국회]19대 국회 '화성 살인' 등 소급적용 못해…피의자 처벌도 손해배상도 불가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


①화성연쇄살인사건은 왜 공소시효 폐지가 안됐을까
-공소시효, 1954년 탄생부터 살인범죄 한정 '폐지'까지

경찰이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꼽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1986~1991년 발생) 용의자로 부산교도소 수감 중인 50대 이모씨를 특정했지만 처벌은 불가능하다. 2015년 국회에서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논의될 때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해당 법을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에까지 적용하는 것이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2015년 7월 ‘태완이법’ 속기록엔=살인사건 공소시효는 19대 국회에서 폐지됐다. 19일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2015년 7월21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일명 ‘태완이법’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형소법) 개정안이 법사위원장 대안으로 가결됐다.



‘태완이법’은 미제 사건인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사건(1999년) 피해 아동 이름에서 따온 법이다. 정부가 2012년 제출한 정부안과 2015년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원입법안 등이 합쳐진 위원장 대안이 같은달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소위에서 ‘태완이법’을 심사하기 불과 11일 전 태완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지만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 논의에는 불이 붙었다. 특히 소위에선 개정 법안을 태완이 사건에 소급적용할지가 쟁점이 됐다.

결론적으로 시행 시점에 공소시효 만료가 안 된 살인사건에는 공소시효 배제가 이뤄졌다. 김주현 당시 법무부 차관은 “현재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경우 공소시효를 늘리거나 공소시효를 폐지해서 처벌하는 입법은 가능하다”고 힘을 실었다.


헌법에서 형벌 불소급 원칙(사건 당시에는 적법했던 행위에는 법이 개정돼도 소급입법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이례적이었다.

다만 국회는 태완이 사건처럼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에는 이를 소급적용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결론냈다. 김 차관은 당시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범죄에 대해서 시효를 폐지해 처벌하는 것은 헌재 결정과 헌법의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에 따라 허용되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로 유명한 고(故) 이형호군 유괴살인사건(이상 1991년) 등 장기미제사건들에 대한 소급적용도 역시 불가능했다.

서 의원은 본회의에서 이 법 제안설명을 하며 “다음 단계는 개구리 소년 실종 살인 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그 놈 목소리’의 이형호 군 유괴살인사건, 그리고 태완이 살인 사건에 대해서 다시 해결하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라고 국회의 숙제를 남겼다.

◇최장 15년이던 ‘공소시효’, 폐지되기까지=살인 공소시효 폐지 입법 논의는 18대 국회에서도 있었다. 2006년 초 이형호군 사건과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10차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연달아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다.

2007년 영화 ‘그놈 목소리’가 개봉하면서 사회적으로 살인 공소시효 폐지 입법 요구 여론이 높아졌다. 신명(통합민주당)·맹형규(한나라당)·최구식(무소속) 의원 등이 이를 주장했다. 이종걸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문병호 전 통합민주당 의원 등은 각각 사형범죄에 30년과 20년으로 공소시효 연장을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공소시효 기간 연장 자체에 이견이 적잖았다. 결국 2007년 11월23일 본회의에서 ‘사형 범죄’에 한해 ‘25년’으로 공소시효가 연장됐다. 이에 따라 기존 형소법상 다른 범죄들의 공소시효도 약 1.5배 안팎으로 늘었다.

다만 이 때는 공소시효가 남은 사건에는 소급적용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태완이 사건 공소시효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점이 두고두고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당시 공소시효 25년이 소급적용 됐다면 2015년 법 개정으로 태완이 사건 공소시효는 폐지될 수 있었다.

◇평균수명·DNA, 공소시효에 미친 영향은 = 당초 공소시효는 최장 15년이었다. 형소법이 제정된 1954년 9월23일부터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 15년’으로 규정됐다.

공소시효제도 자체는 수사 기관의 행정 효율을 위해 마련된 부분이 있다. 미제사건에 수사·사법 기관이 계속 매달리는 것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범인이 장기간 도피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며 형사처벌에 버금가는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 등도 공소시효제도가 마련된 이유로 작용했다.

평균 수명도 ‘공소시효 15년’을 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형소법 제정 후인 1960년대에도 한국인 평균 수명이 50세 안팎에 불과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 교수는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그 시대엔 살인 등 사형 범죄의 공소시효로 15년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학과 과학의 발전이 공소시효의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공소시효는 최장 25년으로 늘어났다. DNA 분석을 활용한 과학 수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피의자 검거 가능성이 줄지 않게 되자 살인 사건에 한해 공소시효가 배제됐다.

해외 법제 사례들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 경범죄에만 공소시효가 있고 공소시효가 없는 데다 미국도 일부 주를 제외하면 살인죄에 공소시효가 없다. 한국에서 살인 공소시효가 폐지되기 5년 전에는 일본이 살인과 강도살인 등 12가지 중대 범죄에 공소시효를 없앴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2004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린 후 이같은 논의가 이어졌다.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②형사처벌 안되는 화성연쇄살인사건…민사소송도 불가?
-공소시효에 소멸시효도 만료…소멸시효 폐지 법안 국회 계류중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33년만에 특정됐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돼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점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민사소송에서의 ‘소멸시효’ 역시 만료돼 피해 유가족들이 손해배상 청구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행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청구의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범죄 사실과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범죄 발생일로부터 10년으로 한정된다. 둘 중 하나의 경우라도 해당되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가 없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가해자를 특정한 시점을 지난 18일로 하더라도, 마지막 사건인 10차 사건이 1991년이었던만큼 이미 10년의 소멸시효가 지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안타깝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민사소송을 통한 손해배상 청구도 하기 힘들 것”이라며 “피해 유가족들이 그간 범죄 사실을 인식하기 힘든 장애 요소가 있었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30년 후 가해자를 알게 되더라도 피해 사실을 구제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살인죄와 성폭행 범죄 등 강력 범죄의 경우 공소시효 폐지와 별개로 소멸시효 역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8차는 모방범죄로 진범 검거/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8차는 모방범죄로 진범 검거/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20대 국회에서 소멸시효를 연장하거나 폐지하자는 민법 개정안이 모두 10개 발의돼 계류중이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손해배상 청구권을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10년, 불법행위가 있던 날로부터 30년으로 시효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미성년자가 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에는 피해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아예 진행되지 않도록 했다.

위 의원은 “타인의 생명을 해하는 범죄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겪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매우 극심해 곧바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특히 아동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성인이 된 후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발의된 ‘정부안’은 미성년자가 성적 침해를 당했을 땐 해당 미성년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도록 했다.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성년이 된 후 스스로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소멸시효 연장 문제를 두고 법조계는 ‘신중론’을 내놨다. 소멸시효가 지나치게 길어질 경우 범죄와 관계된 가해자와 피해자 역시 나이가 들면서 자식이나 손자 등 제 3자의 싸움이 되고, 법률 과정이 복잡해져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화성연쇄살인범의 경우 민사소송을 이기더라도 실질적으로 집행이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용의자가 90년대부터 계속 수감중인 상태인데 재산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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