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LCD(액정표시장치)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TV는 싸구려 저질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4K에 이어 8K까지 출시하며 LCD 사업의 기술력과 생산량 모두 한국을 추월했다는 평가다.
한국 점유율이 30% 아래로 떨어진 것도 중국에 '국가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준 것도 모두 처음 있는 일이다.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중국 최고지도부가 2015년 첨단산업 육성정책인 '제조 2025'(중국 굴기)를 내놓은 후 중국 디스플레이의 성장세는 파죽지세다. 2016년부터 3년간 BOE, 티엔마(Tianma), 차이나스타(CSOT) 등에 30조원의 보조금을 투입해 생산설비를 급속히 늘렸다.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2017년 중국은 LCD 생산 면적과 출하량 기준으로 한국을 추월했다. 지난해부터 10.5세대 초대형 LCD 공장을 가동한 BOE 이어 차이나스타도 올 1분기 합류하면서 패널 가격 폭락이 시작됐다. LCD 매출 비중이 70~80%인 LG디스플레이는 올 상반기에만 5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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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스마트폰용 OLED 시장은 95%(삼성디스플레이 93.5%, LG디스플레이 2.1%) 이상 한국이 독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대대적인 투자에 본격 나설 경우 중소형 OLED 격차도 단숨에 좁혀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내년 중국의 중소형 OLED 투자 비중이 53%로 40%인 한국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에 아이폰 OLED 패널을 전량 의존해온 애플은 최근 중국 BOE에 공급 여부를 타진하고 현재 테스트 중이다. 내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BOE 패널 품질이 나쁘지 않은 데다 가격도 삼성디스플레이보다 15~20%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한국이 일본 LCD의 자존심으로 불린 '재팬 디스플레이'(JDI)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970년대 샤프가 전자계산기용 액정 양산에 성공한 후 급성장한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은 1990년대 후반까지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히노마루(일장기) 액정 연합'(소니, 도시바, 히타치 LCD 패널 사업 통합)으로 불리며 일본 디스플레이 부활을 이끌 것으로 기대를 받은 JDI는 한국과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에 밀리고 OLED 전환이 늦어진 탓에 올해 초 대만, 중국 컨소시엄(800억엔·약 8860억원)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한 업계 관계자는 "JDI가 자사 기술에 대한 과신과 투자 경쟁에서의 패퇴로 사실상 소멸됐다"며 "상대적으로 기술 격차가 큰 OLED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도록 R&D 투자 확대와 우수인재 양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