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광주 북구 중흥동 한 공원 앞 도로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은행나무 열매로 인한 악취 민원과 교통 불편 해소를 위해 은행을 털어 수거하고 있다./사진제공=광주 북구
가로수 10그루 중 1그루가 은행나무…"까치발 들어도 냄새 못 피해요"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가로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2일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심어진 가로수는 총 823만여 그루. 이 중 은행나무는 102만9000여 그루로, 전체의 12.5%다. 이어 왕벚나무(97만9000그루), 이팝나무(60만8000그루) 순으로 많다.
이러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열매에서 나는 악취 탓에 은행나무는 가을마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다. 은행 열매 악취는 씨앗 겉면을 싸고 있는 과육질의 지방산 때문. 은행나무는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곤충이나 동물이 은행종자(열매)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냄새와 유독물질은 내뿜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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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은행 열매 피하기에 한창이다. 직장인 양모씨(29)는 "가을엔 길 걷기가 짜증날 정도다. 대중교통 안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은행 열매 냄새가 풍긴다. 한번은 버스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길래 누가 대변을 눈 줄 알고 놀라서 두리번 거렸는데 옆에 은행 열매가 터져 있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대학생 조모씨(23)는 "학교 캠퍼스에 은행나무가 많아서 가을이 되면 친구들끼리 '재앙이 왔다'고 표현한다. 까치발 들고 걸어도 냄새는 피할 수가 없다. 강의실에서 꼬릿꼬릿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토로했다.
미리 거둬들이고, 바꿔 심고…'은행과의 전쟁'에 한창인 지자체지독한 냄새로 인해 은행나무를 없애달라는 시민들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관련 민원이 늘자 지자체에서는 은행 열매가 떨어지기 전 거둬들이거나 나무를 바꿔심는 등 적극 조처하고 있다.
경기 안양시는 올해 봄 은행나무 열매를 미리 수확했다. 지난 5월 열매를 맺는 암나무 1800그루 중 203그루를 대상으로 약품을 살포해 조기 결실과 낙과를 유도, 악취의 싹을 제거했다. 부산시도 이달 은행나무 가로수 열매 조기 채취에 나섰다.
열매를 맺는 암나무를 없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구분돼 있는데, 암수 구분하는 데 최대 30년 가까이 걸려 그동안 암수의 구분 없이 가로수로 심었졌다. 부천시는 지난 5월 열매 악취 민원 해소를 위해 은행나무 126그루를 수나무로 교체했다. 충북 청주시도 2015년부터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꿔 심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교체되고 제거된 은행나무 가로수만 약 5300그루.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은행나무 제거 사업에만 총 57억9236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박완주 의원은 "나무은행 사업과 연계하고, 조기 낙과를 유도하거나 관련 약제를 개발해 은행나무를 최대한 보호하도록 산림청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며 "단 며칠간의 불편함 때문에 소중한 자원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