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주인 해외도 안갔는데…'돼지열병' 대체 누가 옮겼을까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9.18 06:30
글자크기

[MT이슈+]냉동·가공해도 감염…북한 멧돼지·추석 성묘객에 옮았을 가능성

편집자주 온라인 뉴스의 강자 머니투데이가 그 날의 가장 뜨거웠던 이슈를 선정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드립니다. 어떤 이슈들이 온라인 세상을 달구고 있는지 [MT이슈+]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3일중국 우한의 한 시장에서 돼지고기가 판매되고 있다. 중국 전체 육류 소비량의 70% 이상 차지하는 돼지고기는 지난해 8월 중국에서 발병하기 시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되면서 생산량이 감소했으며 이로 인해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9월부터 13주째 오르고 있는 돼지고기의 가격 안정을 위해 1인당 1일 1kg의 돼지고기만 구매할 수 있는 구매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사진=뉴시스3일중국 우한의 한 시장에서 돼지고기가 판매되고 있다. 중국 전체 육류 소비량의 70% 이상 차지하는 돼지고기는 지난해 8월 중국에서 발병하기 시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되면서 생산량이 감소했으며 이로 인해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9월부터 13주째 오르고 있는 돼지고기의 가격 안정을 위해 1인당 1일 1kg의 돼지고기만 구매할 수 있는 구매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사진=뉴시스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ASF)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하면서 방역과 양돈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검역당국은 발생원인을 조사중인데, 이 병이 어떤 가축 감염병인지, 어떻게 한국에 전파됐는지, 사람은 안전한지, 돼지고기 섭취는 괜찮은지, 돼지고기 가격이 치솟지는 않을지 등 다양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6시 경기 파주시 연다산동의 한 양돈 농장에서 어미돼지 5마리가 폐사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정밀 검사 결과 17일 오전 6시30분쯤 양성으로 최종 확진됐다. 이날 오후 경기 연천의 한 양돈 농장에서도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1921년 케냐에서 시작… 2007년 동유럽→2018년 중국→2019년 5월 북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돼지에만 발병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제1종 가축전염병이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1921년 처음 발생했다. 매우 빠르게 전파되는 특성을 보여 급성형의 경우 감염됐을 때 치사율은 100%다.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발병시 살처분 외에는 방법이 없다.



처음 케냐에서 발생한 뒤 바이러스는 이후 사하라 이남 지역의 아프리카 국가들에 전파됐다.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포르투갈에서 1957년 발생한 이후 스페인, 말타,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주로 서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중남미 지역은 1971년 쿠바에서 발생한 이후 도미니크 공화국, 아이티, 브라질 등에서 연달아 발생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각각 1994년, 1995년 아프리카돼지열병을 근절하는 등 잠잠해지던 찰나, 전세계적인 발병이 시작됐다.

본래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서유럽, 아프리카 근방에서만 발생했지만 2007년 항구의 선박에서 나온 잔반을 통해 흑해 연안 국가인 조지아에서 발생한 후 인접국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러시아 등 동유럽을 중심으로 전파됐다.


농장 주인 해외도 안갔는데…'돼지열병' 대체 누가 옮겼을까
아시아는 꾸준히 '아프리카돼지열병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었지만, 지난해 8월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아시아 최초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면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난 1월15일 몽골에서 발생한 뒤 베트남(2월19일), 캄보디아(4월3일) 등에서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 5월23일에는 우리나라와 국경을 접한 북한에서도 이 병이 발생하면서 한반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후 라오스(6월20일), 미얀마(8월14일), 필리핀(9월9일) 등에서도 발생 사실이 보고됐다.

◇냉동, 부패도 뚫는 강한 바이러스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감염된 돼지는 분변, 침, 오줌 등 분비물을 통해 바이러스를 배출한다. 감염됐거나 감염 후 회복돼 보균동물이 된 돼지와 야생멧돼지 등은 다른 돼지에게 질병을 직접적으로 옮길 수 있다. 바이러스를 보유한 물렁진드기, 연진드기 등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다.

간접적 감염도 적지 않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매우 저항성이 강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기를 냉동했든,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이 부패됐든 감염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세계식량자원기구(FAO) 등에 따르면 냉동 돈육에서는 1000일 이상, 건조되거나 염지된 가공육에서는 300일 이상, 실온에 방치해 부패한 혈액에서는 15주 이상 감염능이 유지된다. 이에 따라 가공된 고기더라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중심부 온도 80도 이상으로 30분 이상 가열할 때만 바이러스가 사라진다는 연구가 있었다.

심지어 바이러스에 걸린 돼지가 살던 축사에서도 바이러스는 한달 이상 감염능을 유지한다. 오염된 축사와, 축사에 있던 기구, 도구, 이곳에서 살던 곤충, 이곳에서 입던 의복 등과 접촉할 때도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

◇대륙을 뛰어넘은 바이러스… 어떻게 전파됐나

저항성·전파성이 강력한 만큼 전파 경로도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 전파 경로는 돼지에 의한 직접적 감염과 '오염된 식육잔반(비가열축산물)'의 양돈 이용이다.

유럽식품안전국(EFSA)이 2008~2012년 유럽지역에서 발생한 284건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원인을 분석한 결과, '돼지 이동에 의한 감염'(38.03%)이 가장 많았고, 이어 '잔반(음식물쓰레기) 사료에 의한 감염'(35.21%)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중국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농장 111곳 중 44%가 잔반 사용 농가였고, 유럽식품안전청도 러시아 발병 사례의 35%가 오염된 잔반이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이외에 '해외여행 시 휴대축산품을 국내 반입하는 여행객'도 주요 전파원인으로 꼽혔다.

/사진 제공=농림축산검역본부/사진 제공=농림축산검역본부
한국은 잔반을 양돈에 이용하는 경우가 적다. 지난 5월 기준 농식품부와 환경부에 따르면 잔반을 먹이는 농가는 257곳, 돼지 11만마리로 국내 전체 돼지수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해외여행객을 통한 전파 차단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휴대용 축산물 반입을 차단하기 위해 입국 항공기 기내 방송으로 축산물 반입 금지 및 입국 시 자진신고를 독려하며 여행객들에게 주의를 촉구했고 국내 여행객들이 가져온 불법 휴대축산물은 검역 과정에서 골라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국경검역 과정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된 사례는 올해 들어서만 소시지(9건), 순대(2건), 훈대돈육(1건), 햄버거(1건), 피자(1건) 등 총 14건이었다. 해외여행객이 신고하지 않고 축산물을 반입했다가 과태료가 부과된 건수도 총 15건에 달했다.

◇북한 멧돼지에서 왔나, 추석 성묘객에서 왔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내로 바이러스가 전파됐다. 당국은 현재 정확한 발생원인과 감염 경로 등을 놓고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이번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파주 농장의 감염 경로는 아직 미궁이다.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경기 파주 한 양돈농장에서 한 관계자가 방역복을 입고 농장을 살펴보고 있다.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으로 발생한 것으로 사람이 걸리진 않지만 돼지가 걸렸을 때 치사율이 최대 1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전염병이다. 구제역과 달리 아직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치명적 질병으로 예방차원에서 살처분 한다. /사진=뉴시스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경기 파주 한 양돈농장에서 한 관계자가 방역복을 입고 농장을 살펴보고 있다. 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으로 발생한 것으로 사람이 걸리진 않지만 돼지가 걸렸을 때 치사율이 최대 1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전염병이다. 구제역과 달리 아직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치명적 질병으로 예방차원에서 살처분 한다. /사진=뉴시스
이 농장은 잔반이 아닌 사료를 사용했고, 농장 주인은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 농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네팔인 4명은 최근 국제우편을 받지 않았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 네팔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국이 아니다.

이 때문에 앞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했고, 우리와 국경을 맞댄 북한에서 바이러스가 온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측에서 야생멧돼지가 내려와 전파됐을 가능성이다. 실제 파주는 북한과 멀지 않은 위치로, 농장은 북한으로부터 10~20㎞ 떨어져 있다.

다만 당국은 육로를 통해 야생 멧돼지가 남하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철책선을 통과해 내려오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육로가 아닌 수로를 통해 떠내려 올 가능성은 열려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발생 농장은 한강 하구로부터 약 2~3㎞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잠복기간은 4~19일 정도로, 추석 연휴에 방문한 친지 등을 통해 바이러스가 옮았을 가능성도 있다. 당국은 현재 명절 기간 가족들이 오간 이력을 확인하고 있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감염경로에 대해 "예단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먹어도 되나요?" vs "가격 오를까 걱정"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여파에 대해 양돈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살처분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양돈 농가에 '재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예상된다. 우리 축산당국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농가와 그 주변 500m에서 키우는 돼지를 모두 살처분, 매몰한 뒤 유통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22일 오전 서울 성동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돼지고기를 고르고 있다. /사진=뉴시스22일 오전 서울 성동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돼지고기를 고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양돈 농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인식 때문이다. 안전한 돼지여도 '혹시나'하는 인식 때문에 돼지고기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서다.

실제 지난 9일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필리핀에서는 소비자들이 돼지고기 소비를 꺼리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 지난 15일 필리핀 일간지 인콰이어러(INQUIRER)는 한 돼지사육자의 말을 인용해 "돼지고기 가격이 지난 며칠 간 킬로당 125페소(약 2900원)에서 95페소(약 2200원)로 24%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축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17일 경기 파주시의 한 돼지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매몰 작업용 장비를 옮기고 있다. /사진=뉴시스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축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17일 경기 파주시의 한 돼지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매몰 작업용 장비를 옮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농가와 주변 돼지는 모두 살처분돼 매몰되기에 병에 걸린 돼지고기를 사람이 먹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람이 감염될 수도 없는 병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일반돼지와 멧돼지 등 돼지과 동물만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동물과 사람 간에 전파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장관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며, 시중에 유통되지 않으므로 국민들도 안심하고 국산 돼지고기를 소비해도 된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으로 오히려 돼지고기 가격이 치솟는 걸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발생 농가의 범위가 늘어날 경우 살처분해야하는 돼지의 수가 늘어나면서 공급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로이터가 중국농림부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뒤 중국에서는 돼지고기가 품귀현상을 빚고, 가격이 치솟았다. 중국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 4일 기준 킬로당 5달러(약 6000원) 이상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날 대비 78% 높은 가격이다. 중국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뒤 지난 7월3일까지 돼지 116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한편,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17일 오후 전국 14개 주요 축산물 도매시장 돼지고기 평균 경매가는 1kg당 6120원으로 전날 대비 1562원(34.3%) 올랐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