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강 장관은 이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전화통화를 갖고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과 관련해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일측의 신중한 대응을 촉구했다. 2018.12.1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말미에 영어로 싸웠다는 얘기도 있다”는 정 의원의 지적에도 강 장관은 특별한 해명없이 사실상 시인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과 한일 갈등 등 산적한 외교 현안의 전면에 선 '외교투톱'의 공공연한 갈등설을 당사자 중 한 명이 공개 석상에서 직접 인정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문제가 된 언쟁은 대통령 순방 당시 외교부 작성 문건에 불만을 가진 김 차장이 외교부 직원을 몰아붙였고 강 장관이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강 장관이 “우리 직원에게 소리치지 말라”고 제지하자 김 차장이 “It‘s my style(이게 내 방식이다)”라고 맞받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영어로 한 동안 말다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차장 역시 영어로 꿈을 꾼다고 할 만큼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익숙해 한다. 외교관 부친(김병연 전 노르웨이 대사)을 따라 학창시절을 미국과 일본 등 외국에서 보냈고, 참여정부 시절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청와대 브리핑 도중 말문이 막히거나 감정이 달아오르면 예고없이 ‘영어 브리핑’으로 변주해 내신 기자들을 ‘멘붕’에 빠뜨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편하다는 방증이다.
외교가에선 두 사람의 갈등설이 수면 위로 부각되자 “터질 게 터졌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강 장관과 김 차장은 각각 한국 외교의 최선봉에 선 주무부처 수장과 외교·안보 부처의 주요 정책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다. 북핵 문제, 한미 관계, 한일 갈등 등 핵심 외교 현안을 함께 다룬다. 김 차장은 특히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대신해 외교· 이슈의 전면에 나서는 일이 최근 부쩍 잦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그립을 세게 쥐고 이른바 ‘외교부 패싱’을 반복하자 강 장관이 이례적으로 누적된 불만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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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가에선 차기 외교부 장관이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1순위로 거론되는 김 차장의 과도한 자신감에서 배경을 찾는 분석도 나온다. 차관급인 김 차장은 현 직제상 강 장관보다 직급이 낮지만 대외적으로 장관급 예우를 받는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김 차장은 지난 달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만나는 사람마다 (안보실) 2차장이 됐다고 축하한다고 했지만,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강등돼 위로를 받아야 된다”고 했다. 현 직급상 상관인 강 장관과 스스럼없이 언쟁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두 사람의 상반되는 업무 스타일에서 갈등 관계를 유추하는 분석도 있다. 강 장관의 리더십이 조용하고 부드럽고 섬세하다면 김 차장은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카리스마형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