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하필 이 시기에…검찰, "'조국가족 수사' 막으려는 사법방해" 주장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19.09.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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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공표죄 충돌][the L]법무부 피의사실공표 금지 추진에 '오비이락'…검찰 강하게 반발

편집자주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를 범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수백건의 피의사실 유포에도 불구하고, 이 죄로 기소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사문화된 이 법은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피의사실 유포 논란으로 '국민의 알권리'와 '인권' 사이의 딜레마에 빠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6일 오전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 열린 '전자증권제도 시행 기념식'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조국 법무부 장관이 16일 오전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 열린 '전자증권제도 시행 기념식'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법무부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피의자의 피의사실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칙을 신설키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수사 대상인 조 장관이 취임과 동시에 이같은 규칙을 만드는 배경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조 장관을 피의자로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법무부가 사회적 합의 없이 규칙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수사 초반부터 여권을 비롯한 '친(親) 조국 진영'에서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렸다며 수사를 압박해온 와중에 나온 조치여서 수사방해를 넘어 사실상 '사법방해'라는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법무부는 오는 18일 '사법개혁을 위한 당정협의'에서 검찰의 수사기밀 유출을 막기 위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칙'을 신설하는 방안을 논의기로 했다. 지난 2010년 4월부터 시행 중인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은 피의사실을 공개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하고 있는 반면 새로 만드는 규칙은 사실상 피의사실 공개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피의자 공개 소환은 피의자가 서면으로 동의하는 내용을 제출할 때만 가능해진다.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또 기소 전엔 수사 내용 자체를 공개할 수 없고 기소 후에도 피고인의 죄명과 기소일시, 기소방식만 공개할 수 있다. 이같은 내용을 어기면 법무부 장관이 해당 검사에 대한 감찰 지시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시절 규칙 개정을 대검찰청과 논의해왔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조 장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오비이락'의 상황이 될 수 있다며 규칙 개정을 유보한 바 있다. 이를 조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다시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법무부는 대검과 협의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지만 대검은 보도를 통해 피의사실 공표와 직적접으로 닿아있는 언론 등과 폭넓은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검찰 측과 논의도 다 마치지 않은 방안을 법무부가 단독으로 강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검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논의는 필요하지만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언론이나 시민사회가 함께 규칙 개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 관련 규칙 개정에 서두르는 이유가 조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조 장관에 대한 수사 내용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검찰 입을 막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조 장관은 이와 관련 "검찰수사와 기소를 포함한 법무행정이 헌법정신에 충실히 운영되고 있는 지 면밀히 살펴보고 감독할 것"이라며 "시행령 규칙과 훈령은 물론 실무관행이라고 간과했던 것도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지 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의사실 공표로 해석될 수 있는 일말의 여지도 없도록 감독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수사 과정을 낱낱이 감찰하겠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새로운 규칙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피의사실 공표 의혹에 대해 감찰을 지시할 수 있도록 했는데 검찰은 수사팀을 압박하려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조 장관 관련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고형곤 부장검사)는 첫 압수수색 당시부터 수사 기밀을 언론과 야당에 유출했다는 공세를 받아왔다.

조 장관이 수사팀에 대한 감찰을 지시함으로써 수사기밀 누출을 이유로 수사팀을 교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체의 수사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감찰을 통해 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피의사실 공표 제한이 수사를 방해하는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조 장관은 "수사를 일선에서 담당하는 검사들의 경우 헌법정신과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 인사 불이익은 없다"며 "오해와 억측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규칙 개정의 필요성은 차치하더라도 조 장관 배우자가 당장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조 장관 스스로가 배우자 등 가족들을 감싸는 모양새가 되는 규칙 개정 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검찰 한 관계자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고 수사팀이 공보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음에도 법무부가 공보준칙 개정을 통해 수사를 방해하려 한다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며 "정당한 수사 과정을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막는 '사법방해'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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