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최근 유럽의회에서의 기후변화 이슈 부각 및 녹색당 계열 약진을 계기로 자국 공항 이용 항공편들에 환경세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3월15일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학생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며 시위를 진행하는 모습. 당시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프랑스,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페인 등 전세계 각국에서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열렸다. 2019.07.10./사진=뉴시스
프랑스 뿐만 아니다. 이번 여름 최고 기온이 새로 수립된 유럽 나라는 최소 12개국으로, 앞으로도 매년 최고 기록이 경신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폭염이 뉴노멀로 자리잡으면서 유럽에서는 물만 있으면 뛰어드는 이들이 늘며 익사자가 속출하고, 에어컨 없는 가정이 경쟁적으로 에어컨 구매에 나서는 등 여름 풍경이 변화하고 있다. (☞'물만 있으면 뛰어든다' 날씨가 모든걸 바꿨다 [이재은의 그 나라, 프랑스 그리고 폭염 ①] 참고)
이런 유럽인들 사이 요즘 가장 핫한 주제는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스웨덴어 flygskam(플뤼그스캄·비행수치)다. 유럽 대륙에서 화제인 비행기 탑승 반대 운동 '플라이트 셰임'은 우리말로 '부끄러운 비행'이란 뜻으로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때에 비행기를 타는 데서 느끼는 죄책감 혹은 수치스러움을 이르는 말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인물로, 평소 '플라이트 셰임'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열리는 유엔 청년 기후변화 정상회의와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탄소배출이 없는 태양광 요트를 타고 스웨덴을 떠나, 15일간 대서양을 건너 지난 8월28일 뉴욕에 도착했다.
여러 운송수단 중에서도 특히 비행기가 타겟이 된 건 비행기가 시간당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운송수단이어서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이 1㎞를 이동하는 동안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285g으로 버스(68g)의 4배, 기차(14g)의 20배에 달한다. 항공산업 전체는 매년 약 10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이는 항공 산업이 한 국가라면 브라질, 캐나다, 한국, 영국 등과 같은 배출량을 뿜어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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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트 셰임' 운동가들은 "플뤼그스캄(flygscam·비행기 타는 걸 부끄러워하라)"거나 "탁쉬크리트(tagskryt·기차로 여행하는 자부심)" "해시태그 #jagstannarpåmarken(나는 지상에 있다)" 등을 외치고 '행동 강령'을 공유하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플라이트셰임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각 국가들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캠페인이 이뤄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FlightFree2020 캠페인'이 시작됐고, 프랑스에서는 'Restons les pieds sur terre'(지상에 있자)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벨기에, 캐나다 등에서도 유사한 프로젝트가 이뤄지고 있다. 네덜란드에선 항공사도 나섰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은 '책임있는 여행' 캠페인에 뛰어들었다. 단거리 여행의 경우 기차 등 다른 여행 옵션 등을 알려주고, 수화물을 가볍게 들고올 것을 권고한다.
이 같은 운동에 동참하는 게 '옳다'는 인식이 유럽 전역에서 공유되면서, 여러 실제적 변화들도 나타났다. 먼저 스웨덴에선 항공 여행이 크게 줄었다. 스웨덴 공항을 운영하는 국영 스웨다비아는 "지난해 국내 승객 수가 3% 감소했으며,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가 그 배경이었다"라고 발표했다. 세계자연기금(WWF)도 "기후 변화 우려로 지난해 스웨덴 국민의 23%가 항공 여행을 줄였다"고 분석했다.
항공기 운항에 따른 환경부담금도 다수 국가에서 신설됐다. 프랑스 교통부는 자국 공항을 이용해 떠나는 항공편들을 상대로 환경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유럽연합 내 항공편은 이코노미석 2000원, 비즈니스석 1만2000원 정도이고, 유럽연합 밖을 연결하는 항공편은 최대 2만4000원이다. 네덜란드도 2021년부터 자국 공항을 이용하는 항공 여객 1인당 7유로(약 9200원)의 환경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벨기에 역시 지난 3월 열린 환경장관회의에서 EU회원국 내 모든 항공에 환경세를 부과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모두가 '플라이트 셰임'에 공감하는 건 아니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벨기에 브뤼셀 소재 비정부기구 '교통과환경' 소속 앤드루 머피는 "프랑스가 부과하는 환경세는 탑승객들의 커피 한 잔 가격보다 적다"며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스 카플란 항공 관련 전문가도 "정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싶다면 아예 여행하지 않아야한다"고 밝혔다. 이는 "유럽인 몇 명이 '행동하는 양심'에 따라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아시아인들이 지속적으로 항공기를 이용한다면 아무 효과가 없다"는 회의적 시각과도 결이 같다.
최근 유럽에서는 '플라이트 셰임' 관련 논의를 하며 아시아의 항공산업, 관광, 교통 인프라 등에 대한 언급이 잦아졌다. 즉 동남아시아인들은 항공기를 자주 이용하고, 인도나 중국 등지에서도 경제성장에 따라 중산층의 항공기 이용이 빠르게 늘고 있으며, 동아시아는 이미 엄청난 관광계의 큰 손이라며 유럽에서 아무리 '플라이트 셰임' 논의를 해봤자 아시아의 동참 없이는 파급력이 적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항공업계의 추정에 따르면 중국, 인도 및 동남아시아에서 중산층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2037년까지 전 세계 항공 승객 수는 두 배로 뛸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증가추세는 가파르다. 2008년 동남아시아 항공사들은 2억명의 승객을 날랐는데, 지난해엔 5만5000만명의 승객을 수송했다.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늘어나는 승객 수에 발맞춰 공항을 증설하거나 신설하고 있는데, 한국과 싱가포르는 공항을 확장하고 있고, 인도는 2035년까지 100개의 새 공항을 건설할 예정이며 중국은 공항 200개 건설을 계획중이다.
2017년 8월1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찍힌 사진. 바르셀로나시가 내려다보이는 위치 한 벽면에 "관광객 여러분, 당신의 호화스런 여행은 내 일상의 고통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AFPBBNews=뉴스1
동남아권 여행 관련 매체 ttrweekly에 돈 로스가 지난 6월 기고한 글에도 이 같은 시각이 담겨있다.
그는 "유럽은 기차 인프라가 잘 돼있으므로 '플라이트 셰임'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아시아는 한중일 3국을 제외하고는 기차 인프라가 갖춰져있지 않다. 동남아시아인들이 국내 여행에도 항공기를 이용할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남아시아인들은 버스, 보트 등 다른 대안들은 위험하거나 불편하고, 노후돼 건강이나 환경에 해를 끼칠 수 있기에 이런 선택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플라이트 셰임' 같은 운동 대신 항공사가 승객의 요구가 많은 노선을 운용하고 직항 노선을 설정하는 등 시장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플라이트 셰임' 관련 기사가 나오자 "유럽을 비롯해 선진국들이 산업혁명하고 지금까지 경제적 번영을 누려온 건 생각을 안하고 왜 이제야 잘 살게돼 이제 막 항공기를 이용하는 아시아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