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나치문양 안 쓰는데 日욱일기 집착, 왜?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9.09.1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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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 '하켄크로이츠' 사용 불법으로 금지한 獨과 달리 日에선 해상자위대 등 군기로 여전히 사용

/사진=AFP/사진=AFP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 논의(경기장 내 욱일기 허용)의 초기부터 경기장은 어떠한 정치적 주장의 자리가 돼서는 안된다고 말해왔다. 대회 기간 중 문제가 생겼을 경우, 개별적으로 판단해서 대응하겠다."(IOC 관계자, NHK와의 인터뷰, 2019.09.11)



2020 도쿄올림픽(7월24~8월9일)이 약 1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경기장 내 욱일기 사용이 사실상 허용되면서 국내 정치권 안팎 반발도 거세다.

외교부 측은 지난 3일 "욱일기는 주변 국가들에 과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일본 측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스포츠 이벤트를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는 것은 스포츠 윤리 규정 등에 부합하지 않고 그런 측면에서 (욱일기 허용 방침이) 시정될 수 있도록 관련 부처와 함께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11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앞으로 장관 명의의 서한을 보내 도쿄조직위의 입장에 대한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명하며 욱일기 사용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사용 금지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욱일기(旭日旗·Rising Sun Flag)는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 나가는 햇살 16개를 형상화한 것으로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인 1870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천황을 위한 군대를 만들면서 일본 육군의 정식 깃발로 채택됐다. 일본 국기인 '일장기'와는 구분되는데 욱일기는 현재에도 일본 육상자위대 및 해상자위대 군기로 사용된다.

특히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 상징기로 사용된 이유로 제국주의 깃발로도 여겨지는데 이 때문에 일본의 욱일기 사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은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불행한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독일은 2차대전 패전 후 사죄 등의 의미를 담아 나치 상징이던 하켄크로이츠 사용을 불법으로 금지시킨 데 반해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사진=AFP/사진=AFP
이러한 욱일기 사용이 논란을 빚은 것은 이번 2020 도쿄 올림픽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함선이 욱일기를 게양한다는 소식에 국내 반발이 커지고 우리 정부도 우려를 전달하자 일본 측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불참을 통보했다.

2014년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식 주간지 표지에 욱일기가 쓰여 논란이 된적도 있는데 당시 비난이 커지자 일장기 디자인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욱일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시아권 국가와 비(非) 아시아권 국가가 다소 상이한 듯하다. 이 때문에 종종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최근 미국인 모델 샬롯 캠프 뮬이 욱일기 문양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해 설전이 벌어진 것이 좋은 예다.

일부 네티즌의 지적에 샬롯은 "왜 욱일기를 금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프랑스, 영국, 미국 국기와 차이점이 무언지를 묻는 듯한 취지로 반박했다. 또 "욱일기는 나치기와 비교가 안된다"며 "나치기는 순전히 나치 이데올로기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에 샬롯의 남자친구인 션 레논(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의 아들)까지 "(나치의 문양으로 쓰인) 스와스티카는 여전히 인도에서 디자인, 직물에 사용된다"며 "그 상징이 나치에 의해 차용됐다고 해서 그것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가세해 논란을 더욱 키우기도 했다.

/사진=샬롯 캠프 뮬(charlottekempmuhl) 인스타그램 캡쳐/사진=샬롯 캠프 뮬(charlottekempmuhl) 인스타그램 캡쳐
샬롯의 경우처럼 서구인들에게는 욱일기가 종종 패션 문양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지난 7월에도 프랑스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가 욱일기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행사장에 나타나 비난을 샀다. 다만 마리옹은 한국인 팬으로부터 SNS를 통해 욱일기 의미를 전해 들은 뒤 이를 버리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프랑스인들이 욱일기 무늬 뜻도 모르고 쓰는 것이 미친 것 같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로버트 F.케네디 공립학교 건물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욱일기를 연상케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6년 그려진 벽화로, 화면 중심에 그려진 여배우 고(故) 에바 가드너 뒤로 펼쳐진 문양이 욱일기와 매우 흡사하게 묘사됐다. 무엇보다 한인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벽화가 위치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이 벽화는 수정되기로 합의됐다.

욱일기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면서 서구 외신에도 종종 이 내용이 언급된다.

CNN은 지난 6일 '악마의 상징, 한국은 왜 일본으로 하여금 도쿄 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 금지를 원하는가?'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에게 욱일기는 문화의 일부분"이라며 "하지만 한국은 욱일기를 일본 제국주의와 전쟁 만행의 상징으로 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20세기 초, 한반도는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됐고 많은 한국인들이 잔인하게 살해되거나 노예가 됐다"며 "그 시기는 남북한 모두에 감정을 자극하는 주제이면서 나이든 한국인들에겐 살아있는 기억"이라고 덧붙였다.

악마의 상징이란 표현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일,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을 허용한데 대한 비판 기자회견을 열고 언급한 데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015년 워싱턴포스트는 "욱일기를 둘러싼 논란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서양에서 욱일기는 심지어 일본의 키치(Kitsch·저속한 작품) 상징물로써 채택되곤 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욱일기,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다른 상징들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은 아시아에서 20세기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생생한지에 관해 상기시켜 준다"고 덧붙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로버트 F.케네디 공립학교 건물 외벽에 그려졌던 벽화/사진=AFP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로버트 F.케네디 공립학교 건물 외벽에 그려졌던 벽화/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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