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간다고 체포… 이란 여성, 분신 사망

머니투데이 남수현 인턴 2019.09.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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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1981년부터 여성의 스포츠 경기장 출입 제한… '블루걸' 사건으로 논란 재점화

2015년 3월 31일 열린 스웨덴과 이란의 친선경기에서 이란 응원단이 '이란 여성을 경기장에 들여보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AFP2015년 3월 31일 열린 스웨덴과 이란의 친선경기에서 이란 응원단이 '이란 여성을 경기장에 들여보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AFP


이란에서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입장하려다 체포된 여성이 재판을 앞두고 분신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10일(현지시간) 현지 언론들은 지난 3월 남성으로 위장해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려다 체포된 사하르 호다야리(30)라는 여성이 법원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지 일주일 만인 9일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란은 1981년부터 경기를 보고 흥분한 남성 관중이 여성에게 욕설, 추행을 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여성의 스포츠 경기 입장을 제한하고 있다. 명문화된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당국의 철저한 집행에 따라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경기를 관람하고 싶은 여성들은 남장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가곤 한다.



호다야리도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이란 축구클럽 에스테그랄의 경기를 보기 위해 남성인 척 꾸미고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 입장하려 했으나 경찰에 붙잡혔다. 3일 간 구금돼 있다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지난 2일에 열린 재판에 참석하고자 법원을 찾았다. 이날 재판은 판사의 사정으로 연기됐지만 누군가 자신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을 것이라 말하는 것을 들은 호다야리는 법원 앞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려다 체포된 뒤 재판을 앞두고 분신 사망한 사하르 호다야리(30) /사진=트위터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려다 체포된 뒤 재판을 앞두고 분신 사망한 사하르 호다야리(30) /사진=트위터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호다야리의 언니는 "동생이 조울증이 있어 2년간 치료와 의사의 감독을 받아왔는데 구금돼 있는 동안 병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호다야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그를 '블루 걸'(Blue Girl)이라 부르며 추모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파란색(블루)은 축구팀 에스테그랄의 공식 색깔이자 호다야리가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착용한 가발과 옷의 색깔이기도 했다.

이란 스포츠계와 정치계도 추모의 메시지를 내놨다. 그간 여성도 축구장에 입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전직 이란 축구 국가대표 알리 카리미는 "호다야리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해 축구장 방문을 보이콧하자"고 트위터를 통해 촉구했다. 이란의 여성 의원 파르버네 살라흐슈리도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호다야리를 추모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란의 성차별적 관습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필립 루터 국제 앰네스티 중동·북아프리카 조사자문국장은 "호다야리에게 일어난 일은 이란 당국이 여성 인권을 무시한 것의 영향을 보여준다"며 "그의 유일한 '죄'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삶의 모든 영역에 뿌리내린 국가에서 태어난 것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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