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아직도 못가봤어?"… '여행 부심' 좀 그만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19.09.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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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박기자]여행 오지랖에 시달리는 사람들

편집자주 출근길 대중교통 안에서, 잠들기 전 눌러본 SNS에서…. 당신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상 속 불편한 이야기들, 프로불편러 박기자가 매주 일요일 전해드립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A씨(30)는 올 추석 연휴를 혼자 보냈다. 고된 업무에 시달렸던 A씨에겐 연휴 내내 자취방에서 먹고 자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었다. 만족스러운 연휴를 보낸 A씨. 그런데 친구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이번 추석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다는 A씨의 친구가 "연휴에 해외를 안 나갔다고? 진짜 안 됐다"라며 그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



"유럽 아직도 못가봤어?"… '여행 부심' 좀 그만
'여행 부심'을 향한 불평의 목소리가 높다. 여행에 큰 가치를 두고 지나치게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많아지면서다.

여행 부심은 '여행'과 '자부심'의 합성어로, 여행 다니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다. 여행 부심이 있는 이들은 여행에 무관심한 주변인들에게 여행을 적극 권유 혹은 강요한다. 또 자신의 여행 스타일을 특별한 것으로 여겨 다른 여행 스타일을 폄하하기도 한다.



학부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대학생 오모씨(24)는 수년째 '유럽여행 부심'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여행은 대학생 때 꼭 가봐야 한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 유럽여행에 다녀온 지인들이 늘면서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

오씨는 "유럽여행에 대한 로망이 없고 여행 자체에 취미도 없다. 취업 준비로 시간적 여유도 없는 상황"이라며 "주변에서 '유럽 꼭 가봐라.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 관심 없다고 하면 '안 가봐서 하는 소리'란 답이 돌아온다. 좋은 소리 듣는 것도 한두번인데, 계속 강요할 거면 돈부터 좀 보태줬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직장인 강모씨(28)도 '여행 부심'이 지긋지긋하다. 그는 "이직 전 쉬는 기간에 지인들이 하나같이 '여행이라도 가라'고 했다. 가까운 해외 다녀왔다고 말해도 '시간 있을 때 장거리 여행 가야지'라며 오지랖을 부리더라. 집에 있으면 이해가 안 간다며 답답한 사람 취급하는데 영화, 집안일, 공부 등 혼자서 여유로운 시간 갖는 것도 평생에 흔치 않은 기회란 걸 모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여행을 무시하며 '해외여행 부심'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직장인 김모씨(34)는 "아이와 국내여행만 다녔는데, 아이 친구 엄마가 국내여행은 다 똑같지 않냐며 왜 해외여행 안 가냐고 자꾸 물었다. 국내여행이 편해서 좋다고 하니 '여행을 안 다녀봐서 그렇다', '해외에 많이 안 가봐서 좋은 걸 모르는 거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며 "내가 느끼는 편안함과 만족감을 왜 자신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여행 부심'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여행보다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는 것. 한 누리꾼(ghkd****)은 "여행 가서 남는 게 사진과 추억이라면, 여행 안 가서 남는 건 시간과 돈"이라며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개인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 남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학원생 정모씨(28)도 "여행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지만 여행 준비가 귀찮아서, 체력이 안 좋아서 등 개인적인 이유로 여행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다"며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여행 다니는 사람을 사치하는 인간으로 보지 말고, 여행 안 다니는 사람을 답답하게 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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