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더위를 식히는 시민들./사진=AFP뉴스1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프랑스 보건부의 태도다. 아그네스 부쟁 보건부 장관은 '1435명'을 거론하며 "프랑스 국민에 보낸 주의 경보 메시지 등 예방 조치 덕분에 사망자를 줄이는데 성공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폭염은 7월에 다시 찾아왔는데, 지난 7월25일 프랑스 수도 파리도 42.6도로 기존 역대 최고 기록(1947년)을 갈아치웠다. 프랑스 현지 언론은 이날 "파리가 아프리카 이집트 수도 카이로보다 더 덥다"고 전했다.
24일(현지시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근처 분수에서 열기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2019.07.26.
이에 따라 당국은 올해 남부 일부 지역에 적색경보를 발표하고, 대부분의 다른 지역엔 적색경보 바로 밑인 오렌지색 경보를 내렸다. 학교 4000여곳이 휴교했고 예정됐던 공공행사도 취소됐다. 전국 단위 시험도 연기됐다. 프랑스 교육부는 지난 6월 말로 예정됐던 중학생 전국 학력평가시험인 브르베를 다음달인 지난 7월 초로 연기했다.
파리시는 심야 수영장을 개장해 개장 시간을 늘렸고, 거리에선 물을 나눠주는 자선단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에어컨 구입에 나섰다. 파리시도 노인들과 병약자, 노숙자 등 폭염에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거리 곳곳에 에어컨이 가동되는 장소를 마련해 쉴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다양한 노력을 통해 그나마 올 여름 폭염 사망자를 1435명에 그치게했다는 데서 프랑스 보건부는 만족감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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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수준의 지독한 폭염은 프랑스의 여름 풍경도 바꾸고 있다. 기존에 유럽은 전통적으로 온화한 기후를 나타냈던 지역이어서 에어컨을 갖춘 가구가 별로 많지 않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전 세계 에어컨 사용률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23%)과 중국(35%) 두 국가가 에어컨 전체 사용량의 절반을 훌쩍 넘긴 반면 유럽 전체 국가는 6%에 그쳤다.
지난 6월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LGBT 게이퍼레이드에서 소방관이 열사병 방지를 위해 참가자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사진=AFP
폭염은 프랑스 인프라 가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7월24일 벨기에에서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향하던 유로스타에서 고장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600명 넘는 승객이 터널 속 40도의 찜통더위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유로스타는 고가 전력공급장치 결함때문에 빚어진 사고라고 설명했는데, 폭염으로 인한 사고로 추정됐다. 지난 7월25일엔 전력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프랑스 원자력 발전 업체인 EDF는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가 너무 더워졌다며 남부 골페쉬 원전의 원자로 가동을 일부 중단했다.
파리 곳곳에서도 의도치 않은 워터파크가 생겼다. 물이 뿜어져나오는 곳이라면 시민들이 들어가 몸에 물을 적셨다. 시내 곳곳 분수나 바닥분수, 교외 강이나 바다, 호수 등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물에 뛰어든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난 6월2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센느강 근처에서 시민들이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AFP
이번 폭염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공기가 유럽으로 치고 올라오면서 이어진 것으로 진단된다. 사하라 사막 상공에서 48도 정도까지 달궈진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제트기류(지상 1만m 안팎에서 수평으로 부는 공기 흐름)를 타고 북상해 유럽 곳곳으로 넓게 퍼져 여름철 열파(heatwaves) 현상을 낳았고, 이게 이번 폭염의 원인이 됐다.
지난 6월2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한 소년이 거리의 바닥분수에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AFP
영국 가디언은 "과학자들은 기후 위기가 여름철 열파 현상이 이전보다 5배나 많이 나타나도록 자극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미국 CNN에 따르면 '올해 최고 기온 기록이 새로 수립된 유럽 나라는 최소 12개국'인데, 앞으로도 매년 최고 기록이 경신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재해 수준의 폭염이 뉴노멀이 된 유럽에선 이로 인한 여러 사회적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선 청소년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이전보다 더 강력히 내고 있다. 최근 매년 기록적인 찜통더위를 몸소 겪으며 자신이 살아갈 터전이 더 이상 변화하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이 청소년과 젊은이 사이에 공유되면서다.
지난 8월1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FFF시위/사진=로이터
정치적 지형도도 변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공유는 유럽에서 녹색당의 지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 따르면 녹색당 그룹은 현재 의석수인 52석에서 17석을 늘리며 69석을 차지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가 젊은 유럽인을 중심으로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26일(현지시간) 독일의 유럽의회 선거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녹색당 당사에서 환호가 터졌다. 이날 출구조사에서 집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저조한 득표율로 승리를 하고, 녹색당이 급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05.27 베를린=AP/뉴시스.
AFP통신은 "기성 정당들이 쇠락한 유럽의회에서 녹색당이 각종 이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녹색당은 기후변화 대응 조치에 대한 서면 약속 등을 연정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향후 녹색당은 환경과 관련해 산업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무역 정책에 대한 수정 등을 요구하며 기후변화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