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판] 내가 이혼했다고? 아내가 몰래 한 '이혼소송'

머니투데이 이소현 변호사 에디터 2019.09.09 05:40
글자크기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지난해 초 결혼한 A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에게 이혼소송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A씨는 이혼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난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는데요.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민사소송법 '무변론 판결' 조항 악용



A씨는 뒤늦게 이혼 소장을 비롯한 모든 소송서류가 자신도 모르는 주소로 배달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주소의 제3자가 대신 소송서류를 받아 A씨가 받은 것처럼 사건을 꾸민 거죠.

이혼소송은 가사소송입니다. 가사소송 절차에 관해서는 가사소송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민사소송법을 적용하는데요.



민사소송법 제256조 제1항에 따르면 피고가 원고의 청구를 다투는 경우에는 소장을 송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제257조 제1항에는 "피고가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원은 변론 없이 곧바로 선고 기일을 지정하여 판결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원고가 소장에서 주장한 사실을 피고가 인정한 것으로 판단, 원고의 주장에 따른 판결이 나올 수 있던 건데요. 이를 '무변론 판결'이라고 합니다. A씨의 아내는 바로 이 무변론 판결을 노렸습니다.

심지어 법원 기록에는 제3자가 아닌 A씨가 이혼소장을 적법하게 송달받은 것으로 나오는데요. 법원은 A씨가 소장을 송달받았음에도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자 A씨의 아내가 이혼소장에 주장한 대로 이혼하라는 무변론 판결을 내린 거죠. 이때 A씨 대신 이혼소장을 적법하게 받은 척한 인물은 존재합니다.


◇다시 재판을 받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A씨는 자신도 모르는 이혼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재심은 확정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때 재판을 다시 해달라는 절차입니다. 그러나 민사소송법이 열거한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재심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물론 A씨 사건에선 제3자가 A씨 아내와 공모해 A씨인 척하고 소송서류를 송달받은 정황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이 자체만으로는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혼 당한 A씨는 재심을 진행할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A씨가 법적으로 다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법원은 “피고에 대한 판결의 송달은 부적법하여 무효이므로 피고는 아직도 판결정본을 송달받지 않은 상태에 있어 이에 대하여 상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 1995.5.9. 선고 94다41010판결)

민사소송법에 제396조에 따르면 항소는 판결정본이 송달된 날부터 2주 이내에 해야 하는데요. 법원은 제3자가 A씨 대신 소송서류를 받았다면 A씨에게 소송서류가 아예 송달되지 않은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항소기간이 개시되지 않은 상태가 돼 A씨는 언제든지 항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씨는 항소심에서 아내의 이혼 청구를 다툴 수 있습니다. 다만 재심을 할 수 있는 경우와는 달리 1심에 대해서 다툴 수 없으므로 3심제에서의 3번의 기회 중 1번은 없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A씨 부부의 이혼이 부적절하다면 항소심에서도 충분히 1심 판결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단, 자신도 모르게 아내가 제기한 이혼 소송. A씨는 이런 1심 판결을 뒤엎는다고 해도 과연 아내와 행복할 수 있을까요?

법률N미디어 이소현 변호사 에디터
▶[법률판]은 네이버 모바일 주제판에서 추가·구독할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