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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규제' 두달만에 국산화 잇단 성공…업계는 '반성중'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9.09.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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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절차 등 번거로움 피하려 日소재 고수했었다"…전문가 "비교우위 관점 정책 필요"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종을 수출규제하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국내업계의 국산화 전략이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의 기술력이 앞선 소재·부품·장비 분야가 여전히 많은 만큼 자만은 금물이지만 패배주의에 젖기보다 전략산업 육성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수출규제 3종 국산화 초읽기 =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한 소재업체는 그동안 일본산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트웰브 나인'(99.9999999999%) 순도의 불화수소 개발을 마쳤다. 이 수준의 고순도 불화수소는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제조공정이나 고사양 디스플레이 공정에 쓰인다.

LG디스플레이 (14,300원 100 +0.7%)는 이미 국산 불화수소 테스트를 완료하고 일부 고사양 공정에 적용해 제품 양산을 시작한 상태다. 삼성전자 (50,700원 600 +1.2%), 삼성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82,400원 1200 +1.5%)도 공정 적용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같은 순도의 불화수소라도 제품공정에 따라 첨가물 등이 달라 테스트가 필요하지만 일본 수준의 고순도 개발에 성공한 만큼 올해 안에 반도체 공정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고순도 불화수소와 함께 수출규제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소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도 국산 생산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시행 이후 두 달 동안 한 건도 수출허가가 나지 않고 있지만 SKC (41,750원 550 +1.3%)가 오는 10월 생산공장을 완공하면 연내 생산할 전망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도 10월 생산라인 가동이 목표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면서 추가 규제할 수 있는 품목으로 거론되는 블랭크마스크, 포토마스크 등도 상당 부분 국산화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랭크마스크의 경우 에스앤데스텍이 자체개발을 마쳤고 포토마스크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자체생산율을 키우는 상황이다.

◇ 日 업체 "삼성 놓칠라" 노심초사 = 국내업계의 '탈일본' 소재 공급이 큰 문제 없이 진행되면서 일본에선 관련 업체들이 오히려 다급해진 분위기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같은 대형 고객사를 놓치면 글로벌 공급망에서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두 달 가까이 규제하고 있는 EUV(극자외선) 공정용 포토레지스트만 해도 한국 고객사를 붙잡으려는 일본 공급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EUV 공정용 포토레지스트는 세계에서 일본 JSR, 신에츠케미칼, 도쿄오카(TOK)가 사실상 독점생산하는 소재지만 글로벌 수요처가 삼성전자와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 2곳에 그쳐 삼성전자를 놓치면 일본업체 입장에서 매출 타격이 크다.

신에츠케미칼이 지난달 신청한 포토레지스트 수출심사를 일본 정부가 예상보다 빨리 두 차례나 허가한 것도 이런 사정을 의식한 결과로 추정된다. JSR의 경우 벨기에 연구센터 IMCE과 설립한 합작사를 통해, 도쿄오카는 인천 송도 공장을 통해 삼성전자에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시장에선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가 애초부터 글로벌 플레이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생산 공정에 타격을 주기 어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글로벌 공급체인에 차질을 빚는 원인제공자로 지목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삼성전자의 반도체 불량률이 올라가서 애플이 아이폰 신제품 적기생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문제"라며 "일본 정부도 사태를 전세계 수준으로 키우는 건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 "모든 소재 국산화 비현실적…냉정히 평가해야" =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국산화 성공사례가 이어지면서 국내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고개를 든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소재를 공정에 적용하려면 테스트 기간에 2~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국산 신소재가 나와도 기존 소재를 고수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런 면에서 보면 소재 국산화를 못했다기보다는 안 했다는 지적이 맞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2일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 6대 분야에서 단기 대응이 시급한 20개 품목과 자립화에 시간이 필요한 80개 품목을 선정, 수입국 다변화와 조기 기술 개발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중소기업을 지원해 부품·소재 분야에서 대일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국산화에 매진하겠다는 데 주목한다.

정부가 소재·부품 국산화 정책을 내놓은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업을 어떻게 재구축하고 연구개발(R&D) 지원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지가 성패를 가르는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든 소재나 부품을 국산화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작을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라며 "국내 소재·부품 분야를 냉정하게 평가해 비교우위 관점에서 국산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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