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승패', 여성 R&D 인력 활용에 달렸다"

머니투데이 정리=유영호 권혜민 기자, 사진=이기범 기자 2019.09.02 04:01
글자크기

[경제강국으로 가는 지혜, 위트(Women In Tech)-②]석영철 KIAT 원장-김명자 과총 회장 대담

[산업현장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확대 방안 모색을 위한 특별대담]

■김명자 과총 회장
-초융합·초지능·초연결 4차 산업혁명… 여성이 강점
-산업전선에 여성인력 '예비군' 아닌 '현역' 투입해야
-성평등이 모두를 위한 진보… '적극적 우대조치' 도입해야



■석영철 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창의성·다양성 요구하는 4차 산업혁명… 여성인력에 주목

-스위스·스웨덴 등 기술강국 여성 R&D 인력에 '패스트트랙' 지원
-R&D 연속성 중요… 한국도 '적극행정'으로 경력단절 막아야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왼쪽)과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숙명역사관에서 만나 산업현장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확대를 방안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왼쪽)과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숙명역사관에서 만나 산업현장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확대를 방안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


'2019년 대한민국'은 도전의 시기를 맞고 있다. 안으로는 저출산·고령화로 성장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밖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산업현장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돌파구를 이공학계 여성인력 확대에서 찾는다. 산업·기술 현장 진출을 확산하는 이른바 '위트(WIT, Women In Tech)'가 위기를 헤치고 경제강국으로 도약하는 '지혜'라는 것이다.



머니투데이는 산업현장의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참여를 늘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두 석학의 만남을 주선했다. 국내 산업기술 R&D 콘트롤타워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을 이끌고 있는 석영철 원장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50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수장에 오른 김명자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숙명역사관에서 가진 대담에서 두 사람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승패는 여성 R&D 인력 활용에 따라 갈릴 것"이라며 "개인 문제가 아닌 국가적 과제라는 인식을 갖고 경력단절 예방과 현장 복귀 지원을 위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공계 여성인력 확대가 왜 중요한가.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하 김 회장)=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특징은 초융합·초지능·초연결이다. 혁신을 위해선 과학기술과 다른 분야와의 융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다른 분야와 서로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 여기서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여성은 소통·공감능력이 뛰어나고, 관계지향적이며 멀티플레이어다. 과학기술이 균형 있게 발전하려면 다원성을 기초로 한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 남성들만 주도하는 생태계는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과제다. 국가가 여성인력을 살려내서 산업전선에 '예비군'이 아닌 '현역'으로 투입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승패를 결정한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이하 석 원장)=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그야말로 초연결의 시대다. 특히 창의성과 다양성이 요구된다. 여성 인력은 이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지금껏 팔로워에 불과했던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역사상 최초로 선발그룹에 낄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현재 R&D 분야 남성인력의 활용은 거의 포화상태다. 풍부하지만 아직 활용하지 못한 많은 여성인력을 더 활용해서 경제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특히 기술 발달로 여성 인력의 사회진출을 막아 온 공간적·시간적 제약이 많이 줄었다. 생명과학·자율주행차·가상현실(AR)·빅데이터 등 유망 신산업에 여성 인력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진출할 수 있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숙명역사관에서 만나 산업현장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확대를 방안 모색을 위한 대담에서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숙명역사관에서 만나 산업현장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확대를 방안 모색을 위한 대담에서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여성 R&D 인력이 잘 활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석 원장=결혼, 육아, 일·가정 양립문제와 관련해 관습상 여전히 여성에게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여성 R&D 인력은 경력의 지속성이 중요하다. R&D 분야는 연구 활동을 계속하면서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쌓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 경력이 단절되면 복구하기가 배로 힘들다. 따라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신경써야 할 과제다. KIAT는 여성 R&D 인력에 대한 재취업 지원 등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여러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여성들은 커리어 복귀를 힘들어하거나 포기하고 있다. 실제로 연구비 10억원 이상 대형 연구과제의 연구책임자 중 여성 비율은 2017년 8.8% 수준으로 10%도 안 된다.

▶김 회장=이공계 여성인력 얘기가 곧 내 얘기다. 1962년 대학 입학하고 지금까지 현장에서 과학기술계 여성인력 부족 문제를 지켜봤다. 여성 R&D 인력의 사회진출 확대는 어려운 과제다. 이미 대학진학률은 여성이 남성을 앞섰지만 2016년 6월 기준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직 인력 중 여성 비율은 20%에 못 미친다. 정규직만 따지면 12%에 그친다. 일·가정 양립의 딜레마는 과학기술 전공에서 특히 심각하다. 유리천장도 너무 견고하다. 연구비 통계가 상징적이다. 2017년 연구책임자 1인당 연구비를 보면 여성은 평균 2억원, 남성은 4억1000만원으로 남성이 여성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여성인력 지원사업을 하다보면 경력단절 후 현장에 복귀한 여성들이 의기소침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금껏 쭉 활동해 왔던 사람들과 비교해 뒤처졌다는 심리적 트라우마다. 재취업 이후에도 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소프트랜딩하도록 이끄는 애프터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실 지금까지 과학기술계에서 일하는 동안 '여성 롤모델'을 찾지 못했다. 당시에는 개인이 일·가정 양립을 택한 이상 혼자서 죽도록 고생해야 했다. 이제는 우리가 롤모델을 만들고 성공 스토리를 잘 알려 여성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숙명역사관에서 만나 산업현장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확대를 방안 모색을 위한 대담에서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숙명역사관에서 만나 산업현장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확대를 방안 모색을 위한 대담에서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
▶김 회장= 산업기술 분야에서 여성들이 활발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공계 졸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의 취업을 돕고, 경력단절 여성을 일터로 돌려보내야 한다. '롤모델'이 많아지면 이공계 전공을 택하는 여학생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이를 위해선 선진국들처럼 '적극적 우대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여성을 위한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불가피한 정책이다. 스웨덴은 적극조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여성 과학기술 연구원의 비율을 36%까지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굴지의 다국적 기업을 보유한 기술 강국이자 인구 1000만명당 노벨상 수상자가 세계 1위(31명)인 과학강국이 됐다. 미국에선 메사추세츠 공대(MIT), 프리스턴대, 펜실베이니아 대학 등 과학자 출신 여성 총장이 여럿 배출됐다. 우리는 이런 경험이 없다.

▶석 원장= 한국도 R&D 제도를 개편해 여성인력 참여가 많으면 가점을 부여하고 있다. 여성 R&D 인력 확대를 위한 성인지 예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제도일 뿐이다. 지금까지 R&D 여성 인력 확대 정책은 '소극행정' 수준에 그쳤다. 특정 목표치를 세워 일정 기간 동안 '적극적 우대조치'를 통해 여성을 늘리는 '적극행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홍보의 중요성도 크다. 많은 성공한 여성 과학기술인이 있지만 아는 사람이 드물다. 청소년들에게 이를 알려야 미래 진로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또 앞으로 과제는 무엇인가.
▶석 원장= 독일은 2001년부터 여학생 대상 산업기술현장 체험행사인 '걸스데이(Girls' Day)'를 개최해 왔다. 1만여개 기업과 10만명이 넘는 학생이 참여한다. 행사 시작 14년 만에 독일 과학기술 전문영역 여성 고용 성장세가 남성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KIAT, 머니투데이가 이를 벤치마킹해 2014년부터 K-걸스데이 행사를 진행 중이다. 올해 6회째인데 여학생들이 실제 연구소와 산업현장에 가서 실습을 하고 성공한 선배 과학기술인을 만난다. 이와 같은 작은 날개짓이 큰 바람이 되는 나비효과를 일으켜 국가 전체에 혁신을 일으켰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다원성을 갖춘 건전한 혁신생태계는 개인이나 개별 연구소가 만들어낼 수 없다. 국가적으로 신경써서 생태계를 완성해야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김 회장= 여성 인재 양성을 활성화시키는 생태계, 토양 조성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사회·제도적으로 치밀한 준비를 통해 모성 보호와 고용 촉진 등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놀고 있는 여성 R&D 인력이 일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이 급선무다. 유연근무제를 통해 여성을 활용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여성이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직에 올라야 한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분야 진출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왼쪽)과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숙명역사관에서 만나 산업현장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확대를 방안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왼쪽)과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숙명역사관에서 만나 산업현장 여성 연구개발(R&D) 인력 확대를 방안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끝으로 한마디 부탁한다.
▶김 회장= 유엔은 '성평등이 모두를 위한 진보(Equality for Women is Progress for All)'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과학기술계가 가장 취약하다. 과학기술 분야는 특히 훈련과 교육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렇게 키워놓은 인력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장시키는 일은 국가적 손실이다. 국가 차원에서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활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여성의 문제로 바라볼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공감대가 마련될 때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있다.

▶석 원장= 최근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국가 산업 위기를 보며 여성 R&D 인력 미활용 문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위스, 네덜란드 들 유럽 선진국은 여성 연구정책 '패스트트랙' 제도를 통해 신진 여성 R&D 인력을 대상으로 연구비용을 지원한다. 우리도 여성인력의 과학기술계 진출을 위한 별도 예산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KIAT도 산업현장에 여성 R&D 인력 참여가 선진국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하고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

[약력]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1944년 서울 △서울대 화학과 △미국 버지니아대 화학 박사 △제7대 환경부 장관 △제17대 국회의원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현)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1957년 서울 △서울대 국사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수료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부원장·기술전략본부장·기술기반본부장 △인하대 석좌교수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