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부터 가동한 소재·부품·장비 수급대응 지원센터에서는 일주일도 안 돼 3000건이 넘는 상담이 이뤄졌다. 현재 거래하는 물품이 수출규제 품목인지, 대체수입처는 어디인지, 국내에서 개발·생산하려면 예산 지원을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등 상담 사례에서 기업이 느끼는 난처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언제든 한국을 칠 수 있는 '통상 무기'를 장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어떤 품목을, 어떤 방식으로 수출규제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일단 긴급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눈치다.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와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10,580원 ▼50 -0.47%), SK하이닉스 (178,200원 ▼3,000 -1.66%) 등 지난달 첫 타깃이 됐던 기업들은 이달 초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전략물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통해 재고 확보에 나섰다.
업계에선 일본 의존도가 높고 산업 영향력이 큰 반도체·디스플레이가 1차 타깃이 됐던 만큼 추가 규제도 국내 주력산업과 일본 의존도가 높은 화학소재·정밀기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주력하는 수소전기차 등에 집중될 것으로 본다.
2차전지 핵심소재에선 아사히카세이와 도레이 등 일본업체가 세계 1, 3위로 시장을 주도하는 분리막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공작기계 부문도 일본산 의존도가 높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공작기계의 90% 이상이 일본 화낙의 운영체계를 사용한다. 정밀가공에 필요한 CNC모듈도 화낙 제품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재계 관계자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지만 일본 정부가 작심하면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이나 창원국가산업단지가 멈춰 설 수 있다"며 "국산화와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하는 것과 별도로 국제 공조를 통해 일본이 사실상의 금수조치를 중단하도록 압박해야 하는 게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강도를 높일 경우 미국, 유럽 등에 미칠 영향이 커 단기적으로 추가규제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일본이 공급 통제를 통해 국내 업계의 차세대 기술, 공정 개발 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정부가 이날 소재·부품·장비 공급망 조기 안정과 상용화를 위해 내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5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업계에선 '발등의 불'을 끄기에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많다. 연구개발을 마치더라도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 241억달러 가운데 소재·부품·장비 적자는 224억달러에 달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일본 수출규제로 국내 대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평균 2.8%, 1.9% 줄어들 전망이다.
유환익 한경연 상무는 "업종에 따라 일부 기업이 적자전환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