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컬럼비아대 팀 우 교수가 처음 주창한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이다. 이는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이 단기간에 글로벌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으로 작용했다. 인터넷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전 세계 ‘무임승차’를 노린 플랫폼 기업들의 헤게모니로 악용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 덕에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이미 거대 권력이 됐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일개 통신사쯤은 쥐고 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망 사업자가 콘텐츠 기업을 차별하는 시대가 아니라 콘텐츠 기업이 망 사업자와 이용자를 차별하는 걸 걱정해야 할 처지다.
바로 2년 전 한국 시장에서 사전 고지 없이 통신 사용자들의 접속경로를 변경해 이용에 불편을 끼쳤던 페이스북(페북) 사례가 그렇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일부 통신사들과 전용 서버 설치와 이에 따른 망 이용료 협상을 벌이던 중 페북이 느닷없이 이들 통신사의 접속경로를 국내 서버에서 홍콩·미국 서버로 바꿨다. 이로 인해 이들 인터넷 회선을 쓰던 이용자들은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접속할 때 버벅거리거나 서비스에 올라온 동영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 불편을 겪었다.
특정 통신 이용자들을 겨냥해 불편을 끼치는 건 엄연히 이용자 차별 행위다. 망 중립성 원칙의 최대 수혜자가 도리어 통신 사업자와 이용자를 차별한 꼴이다. 가까운 지역 서버 대신 해외 서버로 접속 지점을 바꾸면서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끼칠지 몰랐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법제도 개선이 시급함을 일깨운 건 그나마 이번 판결의 수확이다. 현행 법 규정들이 주로 국내 사업자들의 규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이용자들을 볼모로 잡고 흔드는 글로벌 사업자들의 횡포를 견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추가적인 입법을 통해 명확한 제재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지, 법 조항의 해석범위를 벗어나면서까지 행정처분 범위를 확대할 순 없다”고 적시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페북은 법원 판결 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한국의 망 비용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따졌다. 앞으로 유사 사례가 발생해도 통신사의 협조 없인 사전고지가 어렵다며 통신사에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정작 한국 이용자들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1심 재판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이용자들의 신뢰는 잃었다. 이용자 신뢰는 2, 3심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