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트가 캄퐁아예르 주변을 지나고 있다. 땅거미가 내려온 브루나이 강변 뒤로 브루나이의 랜드마크, 오마르 알라 사이프딘 모스크(Omar Ali Saifuddien Mosque)가 보인다. /사진=afp
그는 "이들 국가들이 WTO에서 개발도상국으로서 얻는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90일 내로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루나이는 세계 손꼽히는 부국이다. 국제통화기금이 선정한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가 카타르, 룩셈부르크,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높다. 1인당 국민소득(GNI·3만2860달러)도 우리나라(2만7600달러·세계은행 2016년 기준)보다 높다. 유엔(UN)에서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Human Development Index) 부문에서도 브루나이는 앞서있는데, 2017년 기준 0.853으로 조사대상 189개국 중 39위를 차지했다. 이는 동남아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2위로, 브루나이는 명실상부 엘리트 국가다.
하지만 브루나이를 작다고 무시해선 곤란하다. 브루나이는 석유와 각종 자원을 바탕으로 작지만 강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브루나이는 1929년 세리아(Seria)지역에서 해상유전이 발전된 뒤 본격적인 산유국의 길을 걸었다. 브루나이는 동남아에서 세 번째로 큰 석유 생산국으로 하루 평균 약 18만 배럴을 생산한다. 액화천연가스(LNG)도 생산하며 세계 9번째 생산국이다. 이처럼 석유자원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부 덕에 브루나이는 대표적 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브루나이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반다르스리브가완에 위치한 브루나이 왕궁 '이스타나 누룰 이만'에서 열린 한-브루나이 MOU 서명식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2019.03.11./사진=뉴시스
그런데 브루나이가 흥미로운 건 비단 브루나이가 산유국이거나 부국이어서가 아니다. 브루나이는 엄청난 복지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북유럽 북지국가들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한마디로 국가가 나서서 국민 생활의 모든 영역을 지원해준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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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복지만 나열해도 이정도다. △대학 졸업까지 모든 교육이 무료이며 학생들은 용돈과 안경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 정부가 정해놓은 일정 요건을 갖추고 유학을 가면 학비가 전액 지원되며 보호자 생활비도 지원된다. △개인소득세와 재산세는 면제된다. △돈이 필요할 경우 가까운 은행에 가서 신용에 관계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상환기간도 빌리는 사람 마음이다. △경로(60세 이상), 장애인, 지적장애 아동 및 피부양자에게는 연금이 지급된다.
△어린이·경찰관의 경우 병원비가 무료이며, 군이나 정부 직영병원은 병원비를 받지 않는다. △이밖의 사람들이 여타의 병원을 갈 경우 어떤 병을 가져도 병원비는 1회 900원에 불과하다. △치료차 해외 병원에가면 치료비가 전액 지원되고, 간병인 숙식과 생활비도 지원된다.
브루나이 해경이 캄퐁 아에르(Kampong Ayer·브루나이 강 위에 지어진 수상 가옥촌)에 위치한 모스크 주변을 살피고 있다. /사진=afp
아무리 산유국이라고 치더라도 브루나이의 국가적 지원은 꽤나 파격적인 측면이 있다. 브루나이는 국민에게 대체 왜 이렇게까지 베풀까.
브루나이는 동남아 유일한 전제주의 국가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이슬람 술탄 왕국으로, 이민이나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등 외부세계에 국가를 매우 한정적으로 개방한다. 이슬람 술탄 통치체제의 보전을 위해 모든 국가정책도 매우 느린 속도로 점진 확대 발전시키고 있고, ASEAN(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 일원이면서도 동남아 사회에서 필요 이상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에서 군 복장을 한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술탄(국왕)이 자신의 73번째 생일 축하 행사 중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19.07.15./사진=뉴시스
이같은 부를 국왕 혼자 차지한다면 국민의 분노와 시위 때문에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볼키아 국왕은 시혜성 석유복지를 베풀기로 결정했다. 막대한 국부를 '국왕의 국민에 대한 관용과 자비로운 은전'이라는 방식으로 사회에 일부 환원하는 방식은 국왕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국민에 부각시키는 역할도 했다.
또 다른 산유국이자, 중세형 절대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유사한 형태다. 세계적인 산유국 사우디는 거대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고용·의료·교육 등에서 시혜성 '석유 복지'를 베풀며 정치적·종교적·사회적 불만을 눌러왔다. 사우디 왕실의 자본 원천은 국영화한 석유 산업(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이다. 사우디에는 국민이 선출한 의회도, 독립적인 사법 기구도 없다. 왕실은 여기에 엄격한 '경찰 감시국가 체제'를 더하면서 체제 안정을 꾀해왔다.
브루나이도 정치적·종교적·사회적 불만을 누르고 전제주의 왕정체제를 유지하며 이슬람국가로서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국가 발전을 이 같은 방향으로 유지해왔다. 볼키아 국왕은 자주권 투쟁으로 1984년 브루나이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킨 뒤 1991년 '말레이이슬람왕정(MIB)'이라는 보수 이데올로기를 국가의 공식 이념으로 제정하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해왔다.
볼키아 국왕은 자신이 수상에 취임했으며, 선왕인 스리 버가완 국왕이 서거한 뒤 선왕이 맡았던 국방장관직도 겸임하고 있다. 국왕은 모든 국사에 책임을 지며 전체적 국내문제를 통제하고 관장하는 행정업무 등도 모두 총괄한다. 이외의 권력있는 자리도 모두 왕실이 차지해 국왕의 친위세력을 모두 장악했다. 외무장관(무하마드 볼키아)과 재무장관(제프리 볼키아)는 국왕의 친동생이고, 각종 국가요직도 볼키아 왕가가 독점했다.
2013년 4월23일 촬영된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의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전경. /사진=뉴시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국에 사는 우리 시각에는 브루나이 분위기가 숨막히기만 하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별로 부럽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지 브루나이는 매년 세계에서 행복한 국가로 꼽힌다. UN이 발표한 2015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브루나이는 덴마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바하마, 핀란드, 스웨덴, 부탄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9위'에 올랐다.
다음 편에서는 브루나이 국민들이 정말 행복한지, 이들의 이슬람 왕국은 현재 형태로 꾸준히 유지될 수 있을지 등을 짚어본다. 브루나이 국가 내부에서나 국제사회에서 브루나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