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동일본 대지진 때 놓친 국산화

머니투데이 이정혁 기자 2019.08.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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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독점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수입에 차질이 생겼다. 직격탄을 맞은 국내 업계는 재고 확보와 공급선 다변화에 나섰다. 한 반도체 업체 CEO(최고경영자)는 "공급선 다변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피해 기업 파악에 착수하고 제조업 전반의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해 소재·부품의 국산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상황이다. 당시 삼성전자 (77,200원 ▼2,400 -3.02%)와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175,100원 ▼7,200 -3.95%))의 총력전 끝에 소재·부품 공급 문제는 3개월 만에 해결됐다.

이후 2011년 2분기에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41.6%)와 하이닉스반도체(23.4%)가 나란히 사상 최고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국산화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정부의 반도체 R&D(연구개발) 예산은 2011년 1440억에서 2017년 499억원으로 3분의 1로 축소됐다.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은 2011년 48%로 정점을 찍은 후 제자리 걸음하고 있다.



'극일(克日) 기획' 취재 과정에서 만난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들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국산화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을 크게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는 최근 삼성전자로부터 협력사 제안을 받고 스펙(사양) 테스트를 앞둔 상태다. 삼성전자가 중소업체에 협력사 등록을 먼저 요청한 것은 이례적이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9,910원 ▼140 -1.39%)도 일본 수출규제 조치 이후 적극적으로 소재·부품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경제보복이 아니더라도 보호무역주의 기조 확산에 따른 불확실한 통상환경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만큼은 장기적 관점에서 민관이 함께 국산화에 착수해야 '절호의 기회를 또다시 놓쳤다'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기자수첩]동일본 대지진 때 놓친 국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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