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팬티, 성폭행 당했을 때 오해"…엉망진창 교원연수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2019.08.2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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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 민원 서류 연수원과 공유…교육부·교육청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중"

공주대에서 열린 교원 1정연수에 참석한 교사들이 제보한 문서 내용. 공주대에서 열린 교원 1정연수에 참석한 교사들이 제보한 문서 내용.


"우리나라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복지가 부족하다."

"티팬티, 망사팬티를 입고 다니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한다. 혹시 내가 성폭행당했을 때 그걸 입고 있으면 '이 여자는 그럴만했다'고 오해 받을까봐 입지 않는다."

공주대학교에서 열린 1정 교사 연수에서 한 강사가 "홍채를 보면 성병 유무를 알 수 있다" 등의 발언으로 문제가 된 가운데 이 연수의 다른 강사 역시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강의명은 '성희롱 성폭력 예방'이었다. 교육부와 관할 교육청은 수업을 진행한 연수원을 상대로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공주대에서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9일까지 전국 17개 교육청 소속 교사들을 대상으로 1정 교원 연수를 실시했다.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은 '사람 블랙박스 건강분석' '성희롱 성폭력 예방' 강의 등에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리고 소속 교육청에도 제보했다.

제목이 "공주대학교 1급 정교사 연수 중 강사의 음담패설"인 청원글이 이달 초 언론에 보도되며 교육부와 경기·인천·세종교육청 관계자 등은 현장 조사에 나섰다. 교육청 관계자들은 교사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을 확인하는 한편 민원이 정리된 내용을 연수원 측에 전달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성희롱 예방 강의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강사는 충북에 위치한 한 사립대의 사회복지학과 여성 교수 A씨다. A 교수는 "섹시하다란 말은 여자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나한테 섹시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밥을 사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

A 교수는 또 성폭력 예방법으로 "여학생들에게 단호하게 'NO'를 가르치는 것 말고는 성폭력 예방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망사팬티나 티팬티를 입고 다니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한다"며 "내가 성폭행 당했을 때 이런 걸 입고 있으면 그럴만했다고 오해받을까봐 나는 입고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여자들 말에 따라 성희롱 가해자가 될 수 있으니 남자들 조심하라", "요즘은 학생들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도 성희롱으로 신고될 수 있다. 칭찬해주기도 무서운 시대가 되었다" 등의 발언도 있었다고 교사들은 제보했다.


강의를 직접 들은 B 교사(29)는 "학교에서 들었던 성폭력 예방 강의보다 수준 낮고 충격적이며 모욕적인 강의였다"며 "해당 강사를 섭외한 공주대 연수원이 어떤 기준으로 강사를 초빙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C 교사(38)는 "유사 피해 경험이 있는 교사가 이 강의를 들었다면 상처입을까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며 "들을 가치가 없다며 중간에 나간 교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연수 운영을 위탁한 교육부와 교육청은 재발방지를 위한 진상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교육청 관계자들은 연수원이 강사 섭외 당시 경력 증빙 서류 등을 미리 받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세종교육청 관계자는 "연수를 진행한 경기·인천·세종교육청 담당 장학사들이 학교현장에 나가 문제의 강의가 교육부 고시에 따른 표준과정에 따라서 이뤄졌는지, 사후 조치가 적절했는지 등을 살펴봤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연수원 관계자 등과 상의해 단기적·장기적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교육청 관계자들은 강사 섭외 단계에서 경력 증빙 서류 등이 누락됐음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보완을 요구했다. 연수원 관계자는 서류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람 블랙박스 건강분석의 강사, A 교수 등은 섭외 전부터 개인적 인연으로 관련 분야에 경험이 많다고 알던 사람"이라고 해명했다.

정현진 전교조 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강사 섭외를 비롯해 1정 연수 전반이 얼마나 부실하게 운영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강의의 질과 연수 목적 적합성은 매년 제기되는 문제인만큼 배움과 나눔을 통한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1정 연수 자격과정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머니투데이는 A 교수에게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연수원 관계자는 "A 교수가 '앞뒤 맥락 없이 해당 발언만 가지고 문제 삼으면 안 된다'면서도 '오해를 불러일으킨 데 대해서는 사과한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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