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는 것보다 임차할 때 더 행복…역설의 행복론 '셋'

머니투데이 권성희 콘텐츠총괄부국장 2019.08.2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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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부모에게 물려 받은 재산이 없는 평범한 월급쟁이나 자영업자에게 집은 풀기 어려운 난제다. 너무 비싸 사려면 엄청난 빚을 져야 하는데 안 사고 있자니 날로 가격이 뛰어 불안하다.



특히 서울에서는 살만한 내 집 하나 갖기가 점점 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되고 있다. 서울에서 웬만한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8억50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 7월 8억5715만원으로 1년만에 1억원이 올랐다. 중위가격이란 주택을 가격 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값을 말한다.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집은 사는 것이 좋을까, 사지 않는 것이 좋을까.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Happiness Hacks)의 저자 알렉스 파머(Alex Palmer)가 각종 조사 결과로 찾아낸 더 행복해지기 위한 역설적인 선택들을 정리했다.



◇집은 빌려 써라=영국 신문 텔레그래프는 집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2017년에 5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집을 사는 것보다 임차할 때 스트레스 수준이 더 낮았다.

이는 집을 사려면 평생 갚아야 할 정도로 큰 빚을 져야 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소득 대비 부채 수준이 높으면 실직을 하거나 다치거나 아파서 소득이 끊기거나 줄어드는데 대한 걱정이 커진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 집 주인들은 가장 큰 걱정거리로 돈을 꼽았다. 돈에 대한 이같은 걱정은 집을 임차해 살 때 느끼는 잦은 이사 가능성에 따른 불안정성이나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보다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돈이 넉넉하지 않다면 대출금을 갚고 재산세를 내고 집을 수리하는데 돈을 쓰며 집을 소유하는 것보다 집을 빌려 스트레스를 줄이고 삶을 단순화하는게 더 행복해지는 비결이다.

다만 이 조사 결과가 집 없는 사람들이 집 있는 사람들보다 항상 더 행복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빚 없이 집을 소유한 경우 스트레스 수준이 크게 낮았다. 결국 집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집 살 돈이 충분한가가 좌우한다.

집, 사는 것보다 임차할 때 더 행복…역설의 행복론 '셋'


◇정년 때까지 일하라=조기 퇴직은 많은 직장인들의 꿈이다. 출퇴근하는 쳇바퀴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조기 퇴직이 생각과 달리 행복에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기 퇴직하는 사람들은 65세 때까지 일하는 사람들보다 행복도가 떨어졌다. 조기 퇴직은 기억력에도 부정적이었다. 미국과 유럽 12개국에서 기억력 테스트 결과를 분석해보니 일찍 퇴직할수록 인지능력이 감소했다.

퇴직 후 행복감과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단지 일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물론 일을 통해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출근을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등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 역시 행복과 인지능력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해주고 규칙적으로 살게 해주며 사람들과 만나는 접점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행복도를 높인다. 이는 이 3가지가 충족된다면 조기 퇴직을 하더라도 일할 때에 비해 행복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세월을 인내하라=젊었을 때는 50이 되고 60, 70이 된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늙어서 인생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조사한 결과 지난해 한국인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20대 때 10점 만점에 5.06으로 가장 낮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올라가 60대 이상에서 6.03으로 가장 높았다.

이에대해 행복연구센터 측은 “지루함, 우울함, 불안함은 20대가 가장 많이 경험했고 스트레스는 30대가 가장 많이 받았다”며 “40대 역시 짜증 등의 경험이 많았지만 60대로 갈수록 모든 부정적인 심리를 낮은 수준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젊을 땐 많은 것들이 유동적이라 변화의 가능성이 큰 만큼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강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며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캐나다 알버타대학 연구팀이 14~43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행복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성별이나 결혼 여부, 실업 여부, 건강 상태에 관계 없이 공통적이었다.

지금 상황이 힘들어 불행하게 느껴지더라도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어가면 자연히 더 좋아지는 것이 있다. 어려운 시절을 참고 견디다 보면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현재의 삶을 받아들여 만족도도 커지게 된다. 행복해지려면 현재의 어려움을 참으며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란 격언은 행복의 이같은 역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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