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지켜야 할 경찰 무도훈련은 한달 1시간 흉내만

머니투데이 윤상구 기자 2019.08.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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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매맞는 경찰(中)]아프다고 빠지고, 상습불참자 5000명, 경기북부, 충북은 무도장도 없어

A 지역의 경찰들이 무도훈련(호신·체포술)을 하기 전 몸풀기를 하고 있다./사진=윤상구 기자A 지역의 경찰들이 무도훈련(호신·체포술)을 하기 전 몸풀기를 하고 있다./사진=윤상구 기자


경찰의 무도훈련은 소집무도훈련과 개인주도형자율 운동으로 실시되며 대상자만 총경 이상 고위 간부를 제외한 전체 경찰의 99%가 넘는 11만8800명에 이른다. 특히 소집무도훈련은 월 1회(1시간) 경찰의 안전을 위한 호신술과 범인검거를 위한 체포술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전국지방경찰청과 경찰서는 월 4회 이상 실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문제는 소집무도훈련이 시간도 짧고 참여의 형태로 진행되면서 부실하게 운영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반대학 경찰행정학과 무도수업(월 4회 8시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력범죄에 맞닥뜨릴 경우 경찰의 안전은 둘째 치고 범인제압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1시간 무도훈련 실전연습은 30분…일부는 ‘하품·시늉만’=지난 1일 오전 10시 30분 A 지역 경찰서 대강당. 편안한 옷차림의 남녀 경찰 60여명이 자신의 휴대전화 뒷면에 연신 손가락을 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휴대전화에 깔린 경찰청 폴에듀(전자출결)를 통해 소집무도훈련(호신·체포술) 참석을 확인받기 위해서다.

잠시 후 대강당 문이 닫히고 무도특채 출신인 B교관의 지시에 따라 훈련에 참석한 경찰들은 양손을 풀어 바닥에 내리며 스트레칭에 들어갔다. 기대하던 경찰의 소집무도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10여분간의 스트레칭 후 오늘 배울 기술인 ‘원레그 태클’에 대한 설명과 시범이 이어졌다.


‘원레그 태클’은 상대방의 한쪽 다리를 잡고 몸쪽으로 바싹 붙어 허리와 하체의 힘으로 상대방을 컨트롤하는 기술이다. 현장에서 동행자(상대자)가 심하게 저항하고 피격이 예상될 때 적절하게 사용하라는 것이다. 곧이어 경찰들은 본격적인 1대1 실전연습에 들어갔고 얼마 후 “좋은데 맞아 맞아…”라며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B교관도 앞줄 왼쪽부터 훈련 중인 경찰들에게 다가가 “아니요.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동행자가 다칠 수도 있다”며 정확한 기술과 주의사항에 대해 교육했고 경찰들도 교관의 지도에 귀를 기울이며 진지한 태도로 훈련에 임했다. 폭염특보에도 불구하고 실전연습은 30분가량 계속됐고 경찰들은 연습에 매진하며 구슬땀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는 연신 하품을 하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다리를 잡고 시늉만 하는 등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전연습이 끝나자 화장실 이용과 간단한 마무리 운동으로 1시간의 짧은 소집 무도훈련은 종료됐다.

B교관은 “직원들이 밤샘 근무로 힘들었을 텐데 열심히 따라 해 고맙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 많은 참석자를 잡아주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그나마 A경찰서의 경우 참석자들이 훈련에 대한 열의가 있는 등 다른 경찰서에 비하면 비교적 나은 편이다.

서울 한 지구대 C경위는 “직원 대부분 업무에 지쳐 있는데 무슨 훈련이 되겠냐. 기술동작 조금 따라 하고 오래간만에 보는 동료들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적당히 1시간 때운다”고 전했다.

D경찰서 E경사는 “호신·체포술은 반복훈련이 필요한데 1시간은 너무 짧은 것 같다”며 “특히 현장에서 써먹지도 못하는 것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많아 흉내만 낼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경기 한 지구대 여경인 F순경은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웠지만 현장 적용은 쉽지 않다. 특히 경찰서 무도훈련도 시간이 짧아 체포술을 익힌다는 것은 힘들고 현장 적용 가능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며 “그래도 동료 경찰에게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자기방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 퇴근 후에는 호신술전문도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무도교관들도 짧은 훈련시간 등에 대해 불만이다. 서울 G경찰서 무도교관은 “준비운동 후 기술동작 시범 보여주고 한두 명 잡아주면 금방 1시간이 간다”고 토로했다.

시민 지켜야 할 경찰 무도훈련은 한달 1시간 흉내만
◇몸 아프다고 열외, 휴대폰 보거나 통화 “맥 빠져서 못해”=경찰서에서 호신·체포술을 지도하는 한 외부 전문 강사는 “현장에 필요한 기술만 가르치고 있지만 맥 빠질 때가 많다.

시간도 부족하고 통제도 안 된다”며 “심지어 아프다고 훈련에서 열외시켜달라는 사람부터 웃고 떠드는 사람,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통화를 하는 사람까지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어린이 호신술훈련보다 못하다”고 하소연했다.

경찰인재개발원 경찰무도체육센터 A교수 요원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근평 때문에 참석에 목적이 있을 뿐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절실함이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더욱 심각한 건 무도훈련에 불참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무도훈련 13.5%(1만6038명) 불참, 경기남부청 ‘꼴찌’=머니투데이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안상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 전국지방경찰청(11만8800명) 무도참석률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충북 92.2%(3522명) △대전 90.9%(3185명) △광주 90.4%(3364명)·대구 90.4%(5654명) △경북 90%(6365명) 등 5개 지방경찰청만 간신히 90%를 넘겼다.

이어 △강원 89.7%(4183명) △부산 89.4%(8896명) △경남 88.9%(6811명)·전남 88.9%(5848명) △제주 88.3%(1761명) △전북 87.7%(4775명) △울산 86.2%(2501명) △충남 85.3%(4906명) △서울 84.8%(2만7879명) △경기북부 83.4%(6143명) △인천 82.5%(6306명) 순이었다.

전국지방경찰청 가운데 참석률이 가장 저조한 곳은 경기남부로 82.1%(1만7210명)였다. 전국 평균 참석률은 86.5%에 머물렀다. 훈련대상자 중 13.5%(1만6038명)는 무도훈련에 참석하지 않았다.

특히 최근 3년간 무도훈련 상습불참자(1년 중 3개월 이상 불참)도 △2016년 5319명 △2017년 5346명 △2018년 5516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구대를 비롯한 현장경찰관들 사이에선 ‘아예 무도훈련을 없애자’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경기 한 지구대 H경위는 “알다시피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형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실질적인 무도훈련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없애고 새로운 방안을 내놓던지…”라고 불평했다.

개인주도형자율운동도 문제다. 영화나 음악감상을 비롯한 단순 취미생활 및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골프는 운동 종목에서 제외됐지만 필라테스·수영·요가 등이 포함되면서 ‘무늬만 무도훈련’이라는 지적도 많다.

관리·감독도 허술하다. 소집무도훈련의 경우 엄격한 출결관리를 위해 지문인식기나 경찰청 폴에듀(전자출결)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개인주도형자율운동은 경찰관 개인이 각 과 서무담당에게 ‘어느 날짜·장소에서 운동했다’는 보고만 하면 훈련을 한 것으로 처리된다.

◇전국경찰서 무도훈련장 30%(82개) 불과…경기북부·충북 ‘전무’=훈련환경도 열악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272개 경찰관서 중 무도훈련장을 갖춘 곳은 30%(82개)에 불과했다.

△서울=32개(22개, 괄호 앞은 경찰관서 수 괄호안은 무도훈련장수) △경북 25개(8개) △충남 17개(8개) △전남 22개(7개) △강원 18개(7개) △경기남부 32개(6개) △부산=16개(4개) △인천 11개(4개) △경남 24개(3개) △전북 16개(3개) △대구 11개(3개) △대전 7개(3개) △울산 5개(2개) △광주 6개(1개) △제주 4개(1개)로 나타났다. 경기북부 13개(-)·충북 13개(-)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현재 무도훈련장이 없는 경찰서는 강당이나 헬스장에 매트를 깔아 놓고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경찰서는 매트 하나 깔리지 않은 강당 바닥에서 훈련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경찰서는 예산을 들여 사설 체육관을 빌려 쓰는 등 더부살이 신세를 하고 있다.

무도교관도 부족하다. 경기남·북부경찰청 2곳과 경기 G경찰서·인천 H경찰서 등 일부 경찰서는 내부 교관 없어 외부 전문 강사와 계약을 맺고 훈련을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 호신·체포술 매뉴얼도 무용지물이다. 경찰청이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호신·체포술 교육을 위해 호신·체포술 매뉴얼을 발간해 경찰관에 배포하고 있지만 매뉴얼에 따라 훈련을 진행하는 곳은 손에 꼽힐 정도다.

매회 훈련 인원이 많은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교관 1명이 적게는 60명에서 많게는 1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맡다 보니 기술전수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 I경찰서 무도교관은 “매회 20∼30명 정도가 적당한데 인원이 너무 많다 보니 1대1 대련은커녕 한 명 한 명 잡아 주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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