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의 10대, 20대, 30대

박희아 ize 기자 2019.08.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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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의 10대, 20대, 30대


배우 조정석은 영화 ‘엑시트’에서 모두에게 만만한 용남이라는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다. 유치원생 조카는 백수인 그와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이라고 피해가고, 청소년기의 조카는 식욕, 수면욕에만 충실한 그의 일상을 한심하다며 비웃는다. 누나는 좀 부지런해지라며 때리고, 부모님은 그를 보며 한숨을 쉰다. 한국 사회에서 1인분의 몫조차 하지 못하는 용남을 연기하며, 조정석은 내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백수도, 식욕과 수면욕에만 충실한 일상도, 게으름도 자신이 선택한 적 없다. 그저 그런 사회적 환경이 주어졌을 뿐이다. 억울할 만도 하다.



2009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조정석은 청소년들의 고뇌를 다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른들의 압박에 억눌려 의지박약, 겁쟁이로 낙인찍힌 모리츠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고 기말시험을 필사적으로 치르지만 결국 낙제점을 받고 만다. 모리츠가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기 직전까지, 조정석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제도 안에서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소년의 얼굴로 견디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2019년, 모리츠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브로드웨이의 라이선스 뮤지컬 속 10대가 아니라 한국의 2030세대가 보여주는 얼굴과 닮아있다. 겉으로는 모두에게 만만하고 우스운 사람이지만, 내면에는 반항기도 있고 어떻게라도 살아남고 싶은 열망이 숨어있다. 그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인 ‘건축학개론’ 속 납뜩이도 마찬가지다. 재수를 해서 대학에 가고 나면 연애를 하고 놀러 다니는 게 제1의 목표이고, 여성과 스킨십의 단계를 높여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 되는 20대. 대학 진학이라는 단계를 먼저 통과한 친구를 부러워하며 그가 내세울 것이라곤 여자친구와의 성적인 관계뿐이었다. 조정석의 뻔뻔스러운 표정과 구시렁대는 말투는 그의 연기의 핵심이다. 유머러스한 말과 몸짓으로 관객을 웃기되, 막상 자신이 처한 상황은 결코 우습지 않은 해학과 자조의 경계를 오락가락한다. 이런 배우가 애드립으로 완성했다는 납뜩이는 20대 대부분이 소위 ‘별 볼 일 없는’ 삶의 표상이 될 어른으로 자란다는 이야기를 하는 인물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엑시트’ 속 용남은 납뜩이가 자라서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암벽등반 동아리, 그 안에서 좋아했던 여성에게 차였지만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마음에 했던 한심한 거짓말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소리를 듣는 일이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생존의 도구가 된다. 다만, 30대의 용남은 조정석이 그동안 연기해온 처절한 10대와 20대의 청년들이 계속 살아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할 일이 없어 침대에 누워 뒹굴던 청년이 놀이터 철봉에 매달려 운동을 할 때만큼은 활기차고, 그 열정이 나와 또 다른 생명을 구하는 힘이 된다. 소박하지만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할 때 반짝이던 용남의 얼굴과 온 몸을 타고 흐르던 땀방울이 바로 스스로와 타인을 동시에 구할 동아줄이었다. 배우 조정석이 모리츠에서 납뜩이가 되고, 용남으로 자라는 동안 그는 커다란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됐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들은 결코 쓸모없는 게 아니라고. 아무리 지금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들 괜찮다고. 살아있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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