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년 차,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가는 동안 불평등한 일상의 문제들에 숨이 막혔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걸까? 결혼의 시작을 알리는 결혼식이 남성 중심 결혼 제도의 예고편은 아니었을까? 보고, 듣고, 배운 대로 살았다. 상상력이 빈곤했던 29살의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사회가 정해놓은 통념과 관습에 따라 결혼식을 치렀다. 친정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 손을 잡고 입장해 줄 사람이 없다고 우울해하며 큰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남편과 둘이 입장하면 되는 간단한 일을 그때는 왜 생각조차 못했을까? 여성이 남성(아빠)의 손에서 남성(남편)의 손으로 넘겨지는 일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니! 폐백실에 남편 가족들만이 앉아 절을 받는 순간에도 난 예의바르게 웃고만 있었다.
결혼 전 온전한 ‘사람’ 대 ‘사람’으로 존재하며 관계를 유지했던 나와 남편이 결혼을 기점으로 갑자기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 남편은 자취 기간이 길어서 요리를 잘하고, 연애할 때 종종 맛있는 음식을 해주곤 했는데 결혼 후 따뜻한 집밥을 차려야 할 의무는 요리에 전혀 관심 없는 내게 주어졌다. 첫째 만삭 때까지 같은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일정이 같았던 우리 부부가 출산 후 전혀 다른 일상을 살게 된 결정적 이유도 성별이다. 여자니까, 엄마니까 자연스럽게 주 양육자 역할을 줬다.
결혼 후 한 ‘사람’이 아닌 한 ‘여자’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무엇을 잃었을까? 육아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탄탄하던 경제력을 잃었고(경력단절로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두 번의 출산은 내 건강하던 몸을 망가트렸고(우스갯소리가 아니고, 비가 오면 진짜 뼈가 시리다), 지칠 줄 모르고 싸우는 아이들은 내 인내심을 바닥냈다(우아한 육아를 할 줄 알았는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을 줄이야!). 그런데 경제력, 체력, 인간관계, 인내심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실된 능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자기 확신’ 능력이다. ‘나’라는 존재를 포기하면서 평화를 유지하느니 잡음을 내더라도 ‘나’를 지키겠다며 “결혼한 여성이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부여잡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결혼한 여자들의 페미니즘 탐구모임을 만들고,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책을 출판하면서 당당하고 유쾌하게 살아갈 여유를 얻었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로서의 나의 한계는 명확하다. 아무리 확고한 믿음으로 결론을 얻었다 해도 끊임없이 분열하고, 의심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결혼한 여성의 확신에 찬 말을 듣게 된다면 믿지 마시라. 가부장제의 위력은 강력해서 자기 합리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여성일지라도 자기 확신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어렵다. 나를 선택하면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가족을 선택하면 나에게 미안해지는 죄책감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 결혼한 여성들의 숙명이다. ‘나’의 존재에 대한 감각을 ‘역할’로 환원하려는 결혼제도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순응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저항하면 불편해진다. 결혼제도에는 모순과 혼란에 빠져 적당히 타협하게 하는 힘이 있다. 완벽한 선택이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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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아이를 선택하고, 일이 아닌 돌봄을 선택할 때 가졌던 확신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결정이었을까? 선택할 때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지만, 육아의 보람과 기쁨에 만족하는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문득 괴롭고, ‘나’의 선택으로 ‘나’를 잃게 했다는 자기혐오에 빠지는 순간을 피할 수 없다. 오랜 투쟁의 성과로 내조하는 아내, 살가운 며느리에 대한 압박을 벗어나서 홀가분하다고 말하는 확신도 종종 흔들린다. 박탈당한 ‘나’를 찾고자 했으나 ‘분열하는 나’를 인정하는 것이 최선임을 알게 되었다. 결혼했을 뿐인데, 남편과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원했을 뿐인데, 우리의 삶은 왜 이토록 달라져야 했을까? 수시로 분노하며 묻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