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자부심 '캐세이퍼시픽', 중국 압박에 꺾였다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2019.08.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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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당국 "시위 직원 본토 항공편서 빼고…비행전 모든 직원 정보 제출" 통보
캐세이 직원들 "중국서 외출 자제" 우려…73년 역사 홍콩 대표 항공사 위기

지난 10일(현지시간) 홍콩국제공항 내 캐세이퍼시픽항공 체크인 카운터 모습. 중국 당국은 캐세이퍼시픽 일부 직원이 홍콩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시위 가담 직원의 중국 본토 진입을 금지했다. /사진=AFP통신지난 10일(현지시간) 홍콩국제공항 내 캐세이퍼시픽항공 체크인 카운터 모습. 중국 당국은 캐세이퍼시픽 일부 직원이 홍콩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시위 가담 직원의 중국 본토 진입을 금지했다. /사진=AFP통신


홍콩 대표 항공사 캐세이퍼시픽항공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으로 촉발된 홍콩 시위 관련 중국 본토 운항이 금지될 위기에 처했다. 캐세이퍼시픽 일부 직원이 시위에 가담했는데, 중국 당국이 시위 참가 직원은 중국 영공을 지나는 항공편에 탑승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캐세이퍼시픽은 관련 직원을 해고하는 등 즉각 대응에 나섰지만 본토 내 불매운동 조짐 등 경영압박은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시위 참가자 中 영공진입 금지=중국민용항공총국(CAAC)은 지난 10일 캐세이퍼시픽을 포함한 홍콩의 주요 항공사에 "앞으로 반(反)정부 시위에 참가한 조종사나 승무원은 중국 영공을 진입할 수 없다"면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비행 전 모든 직원의 인적정보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홍콩에서 중국 본토에 취항하는 항공편은 물론 중국 영공을 지나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로 가는 항공편도 모두 해당한다.



중국 당국의 이번 조처는 최근 캐세이퍼시픽 일부 직원이 시위에 참가한 데 따른 일종의 보복이다. 앞서 지난달 말 캐세이퍼시픽 소속 조종사 한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홍콩 경찰에 체포됐으며 지난주에는 지상직 직원 2명이 중국 쓰촨성 청두로 친선 축구경기를 떠난 홍콩 경찰 축구팀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해 논란이 됐다. 경찰의 강경 진압에 비판적인 반정부 성향 시민이 소셜미디어 등에서 "더러운 경찰이 중국으로 축구를 하러 갔다"고 공개된 경찰을 비난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관영 언론을 통해 캐세이퍼시픽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캐세이퍼시픽이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다면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본토에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불매운동까지 일어날 조짐"이라고 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그러면서 페덱스 사례를 언급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6월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를 제재하자 페덱스가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화웨이 관련 화물을 고의로 미국으로 보냈다고 주장하며 전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캐세이퍼시픽은 중국 당국의 경고 이후 시위에 참가했던 조종사를 비행에서 제외하고, 경찰 개인정보를 유출한 직원 2명은 즉각 해고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또 중국 당국의 요청에 따라 중국 영공을 통과하는 모든 항공편에 탑승한 직원 정보를 보내 사전승인을 받기로 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건은 중국과 사업을 진행하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홍콩 일각에서는 중국의 정치적 잠식(encroachment)이 캐세이퍼시픽 뿐만 아니라 모든 다국적 기업에 경제적 위협이 된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11일(현지시간) 흰옷을 입은 친중국 성향의 사람들이 반정부 시위 참가자를 주먹으로 때리려 하고 있다. /사진=AFP통신11일(현지시간) 흰옷을 입은 친중국 성향의 사람들이 반정부 시위 참가자를 주먹으로 때리려 하고 있다. /사진=AFP통신
◆"中서 혼자 외출하지 말라"=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 본토 여론이 악화하자 캐세이퍼시픽 직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일부 캐세이퍼시픽 직원들은 NYT에 "아직 회사가 직원들에 대해 시위 가담 여부나 시위 관련 입장을 조사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일부 직원들은 중국의 요구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커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캐세이퍼시픽 승무원노조도 소속 노조원에 "중국에서 하루 이상 머물 경우, 혼자 외출을 삼가라"며 "중국 본토의 홍콩인에 대한 반감으로 피해를 보거나 갑자기 체포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홍콩 시위 관련 본토 취항에 일정 부분 제재를 받으면서 캐세이퍼시픽 경영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1946년 설립된 73년 역사의 캐세이퍼시픽은 1948년 영국계 스와이어그룹이 인수했으며,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홍콩이 아시아의 무역과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캐세이퍼시픽도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홍콩인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홍콩을 거치기보다 직접 중국 본토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중국 본토 국영 항공사들의 취항지가 늘어나면서 캐세이퍼시픽의 입지도 점차 줄기 시작했다. 또한, 중동의 두바이 등이 아시아와 유럽 등을 연결하는 허브 공항으로 부상하면서 글로벌 허브 항공사로서의 위상도 약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한 전문가를 인용해 "외교적 긴장이 고조될 때 항공사, 특히 국적 항공사가 공격대상이 되곤 한다"면서 "중국 당국이 캐세이퍼시픽의 본토 취항을 막지는 않았지만, 각종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운영상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했다. NYT는 "캐세이퍼시픽의 곤경은 홍콩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드러낸다"며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이 격해지는 가운데 반중 시위까지 장기화하면서 홍콩 경제가 짓눌릴 것이라 예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홍콩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줄고, 홍콩 증시도 지난 몇 주간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캐세이퍼시픽과 모회사인 스와이어퍼시픽 주가는 장중 한때 각각 4.5%, 5.3% 떨어지며 2009년 6월 이후 약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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