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 만난 日업체 "우리가 정부 설득…거래 유지해달라"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9.08.1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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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韓업체 변심에 세계 1위 스미토모 매각 트라우마…"매출·형평성 내세워 거래선 지키기 나선 듯"

[단독]삼성 만난 日업체 "우리가 정부 설득…거래 유지해달라"


일본 반도체 소재업체가 최근 삼성전자 최고위급 인사들을 만나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에도 불구하고 거래를 유지해달라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일본업체의 해외합작법인 등을 통해 추가물량을 확보한 것도 이런 공감대에서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12일 복수의 정·재계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 소재업체 A사는 삼성전자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으로 가는 소재를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지만 우리(일본 업체)가 알아서 설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 업체는 일본 정부가 지난달 4일부터 수출규제를 강화한 고순도 불화수소,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감광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종 소재를 생산하는 곳 중 하나다.

소식통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지만 일본 업체들이 공급 의지를 강하게 밝혀 삼성전자에서도 숨통이 트였다"며 "삼성이 일본 업체인 JSR의 벨기에 합작법인을 통해 6개월치 이상의 포토레지스트 물량을 확보한 게 이런 만남에서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일본 소재업체들이 수출규제로 삼성전자 (75,500원 ▼600 -0.79%)SK하이닉스 (171,000원 ▼600 -0.35%) 등 글로벌 반도체시장 최대 고객사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거래선 지키기에 돌입한 것"이라며 "일본에서도 수출규제를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A사는 "삼성전자가 예전처럼 계속 주문을 유지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일본 외에 미국·유럽·중국 등의 업체로 공급선을 갈아탈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라 제기되자 거듭 거래 유지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수출규제가 시작된 뒤 40일 동안 일본 정부가 허가한 수출신청은 지난 7일 이뤄진 신에쓰화학의 EUV용 포토레지스트 수출 1건에 그친다.


업계에선 JSR이 벨기에 합작법인을 통해, 일본 도쿄오카공업(TOK)이 인천 송도 생산공장을 통해 수출로를 뚫은 것을 감안할 때 같은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만들지만 해외법인이 없는 신에츠화학이 형평성을 내세워 일본 정부를 설득했을 가능성을 높게 본다. 그만큼 일본업체 사이에서도 삼성전자와의 거래를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경우 일본 모리타화학공업이 중국 상하이 생산라인을 활용해 한국으로의 수출을 검토하겠다고 공식입장을 밝힌 상태다. 역시 일본 업체인 스텔라케미파도 싱가포르 생산물량을 한국에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관계자는 "모리타화학과 스텔라케미파가 해외 우회로를 통해 삼성전자에 물량을 공급하면 해외 생산공장이 없는 없는 업체들은 형평성을 이유로 아베 내각 설득에 나설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일본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규제 효과가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소재업계에선 세계 최고 기술력이 있더라도 삼성전자 같은 대형 거래처를 놓치면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크다. 1990년대 세계 반도체 에폭시수지 물량의 60%를 생산했던 스미토모화학이 제조공장 폭발사고로 감산한 사이 삼성전자가 중국, 대만으로 공급처를 다변화한 사례가 있다. 당시 스미토모화학은 공장을 정상 가동한 뒤에도 수익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해당 사업을 대만 업체에 매각했다.

박재근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일본 수출규제로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가 공급처를 다변화할 경우 최종적으로 타격을 받는 것은 이번에도 일본이 될 수 있다"며 "일본 소재업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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