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조선사 노조에게 '극일'이란?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19.08.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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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역설적인 상황이 된 거죠."

일본 경제 도발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32,600원 ▼1,850 -5.37%) 주요국 기업결합 심사의 변수로 떠오른 것 관련, A조선사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사측이 아닌 양사 노조에 관한 이야기였다.

기업결합 심사는 양사 합병에 반대하는 노조에게도 최대 관심사다. 심사 대상국 중 한 곳만 반대해도 합병은 없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회사를 상대로 합병 반대 투쟁을 전개하는 노조지만, 현실적으로 합병을 무산시킬 주체는 심사 대상국이라는 사실을 노조도 알고 있다.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최대 변수는 세계 상선 운영 상위 25개국 중 10개국이 포진한 EU(유럽연합)이었다. 배를 만들어주는 '을'의 덩치가 커지는 것을 좋아할 리 없기 때문이다. EU 선택에 따른 결합심사 시나리오는 △반대△승인△조건부승인 세 가지로 예상됐다. 물론 '반대'가 노조에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의외로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노조 내부에서 감지된다. EU가 조건부 승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특정 제품의 세계 점유율이 50%를 넘어설 경우 설비·자산 매각을 전제로 기업결합을 인정하는 것이 조건부 승인이다. 1990년 이후 EU가 전체 기업결합 신청 중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린 비중은 58%에 육박한다.



이렇게 되면, 합병 조선사의 새 주인이 될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오히려 구조조정 명분을 얻는다. 당초 양 노조가 합병 반대에 나선 이유가 합병으로 덩치가 커질 조선사의 잠재적 구조조정 가능성이었다. 결합 전면 승인보다 아예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을 명시할 조건부 승인이 노조에 더 아픈 이유다. 양 노조는 일제히 조건부 승인의 폐해를 소식지에 싣기도 했다.

일본 변수는 이 같은 상황에 끼어들었다. 아직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될 수록 일본이 '반대' 깃발을 들 여지가 커진다. 노조가 원하는 시나리오가 일본의 셈법과 일치하는 역설이 전개될 수 있다.

2주 휴가를 마친 양사 노조는 하투(夏鬪)를 준비 중이다. 물론 '합병반대' 구호도 이번 하투에 포함된다. 하지만 합병반대 투쟁 강도가 높을수록, 한일관계 악화의 골이 깊어질수록 노조와 일본의 '커플링' 현상도 두드러질 것이다. 이미 파업권을 얻은 양 노조가 일본 커플링을 감수하면서까지 강도 높은 투쟁에 나설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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